2023. 5. 1. 19:30ㆍ한코코의 취미생활/슬기로운 반려식물 집사생활
정의
담장이나 울타리로 둘러싸인 내부 땅에서 집약적으로 작물을 재배하는 농업.

개설
원예(원예, horticulture)의 어원은 라틴어 'hortus'(garden, enclose: 둘러싸임),
'cultura'(culture: 재배, 손질)에서 유래되었으며
1678년 처음으로 'horticulture'로 표현되었다.
원예는 보통 채소원예·과수원예·화훼원예로 나뉜다.
채소는 원칙적으로 신선한 상태에서 부식 또는 간식으로
이용되는 초본성 재배 식물을 의미한다.
채소를 일반 작물과 구별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점에 유의해야 한다.
첫째, 채소는 신선한 상태로 공급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채소 중에도 무말랭이·시래기 등의 건채소가 있는데,
이들은 본래 이용 상태에서 벗어난 예외적인 것이다.
또한 콩류는 보통 작물이지만 어린 팽이처럼 미숙한 것을
이용하는 경우 채소에 속한다.
둘째, 부식 또는 간식으로 이용된다는 점이다.
감자·고구마·옥수수 등과 같이 간식 또는 부식용으로 재배되는 경우에는
식량 작물이 아닌 채소로 취급해야 할 것이다.
셋째, 산과 들에 자생하는 초본성 식용 작물은 이용 방법이 채소와 같으나
재배 식물이 아닌 관계로 채소로 취급되지 않아
산나물 혹은 채소라 하여 채소와 구별한다.
채소가 식품으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는
비타민A와 비타민C 함량이 많은 점, 칼슘·인·철·요오드 등
무기질의 좋은 급원이 되는 점, 알칼리성 식품이며
셀룰로오스(cellulose)와 같은 거친 것이 포함되어 있어
보건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과수는 생식하거나 가공하여 식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과실을 맺는 나무를 말한다.
따라서 과수원 예의 본래 의미는 도난·풍해 등을 방지할 목적으로
울타리·담장 등을 두른 땅에서 식용으로 쓰이는
과실을 맺는 나무를 집약적으로 재배하는 것을 말한다.
과수의 영양학적 가치를 보면 밤·호두와 같은 각과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85% 내외가 수분이고 탄수화물은 10% 내외이다.
그 외에는 소량의 단백질·지방 및 무기염류로 조성되어 있다.
또한 기호식품으로서 특유의 단맛·신맛 및 향을 가지고 있다.
과실은 예로부터 주로 생식으로 이용되어 왔으나
보존과 수송 등 취급하는데 어려움이 많아
최근에는 통조림이나 건과를 만들거나 과실주나 청량음료 제조에 이용되고 있다.
화훼원예란 관상을 대상으로 하는 초목류를 집약적으로 재배하여
그 가치를 높이는 재배 기술을 의미한다.
화훼는 우리에게 아름다움과 위로를 주는 식물로
초본화훼뿐만 아니라 목본화훼도 여기에 포함된다.
또한 일반적으로 관상 식물이라고도 하며 관상의 대상은
식물 전체, 즉 꽃·줄기·잎·가시·열매까지도 포함한다.
따라서 화훼원예는 재배와 관상뿐만 아니라
생산된 화훼를 재료로 하여 꽃꽂이 장식에 사용되는 한편
정원·화단·광장·공원·녹지대 등의 배식에 화초와 꽃나무를
곁들이는 조경의 일부에도 포함되어 있다.

발달사
고대의 원예
이 땅에 농경 문화가 시작된 것은 대략 기원전 3000년경 신석기 시대라고 한다.
이때 작물은 기장이나 피 같은 원시 곡물류였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원예 작물 재배도 농경 문화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일부 특수한 원예 작물의 인위적인 재배보다는
야생 식물의 원예적 이용이 주를 이루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단군신화에서는 마늘과 쑥에 대한 언급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오늘날의 마늘과는 성격이 다른 야생하는
아리움(allium)의 일종인 달래나 산나물로 여겨진다.
쑥은 어디서나 무성하게 자생하는 식물이므로 재배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단군신화에 쑥과 마늘이 실리게 된 것은 예로부터 이들을
영약으로 믿어왔기 때문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시대 사람들이 식용한 채소류는 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세기경에는 농업이 지역 기후 조건에 적응, 분화하여 북부 지방에서는
밭농사, 남부 지방에서는 벼농사가 발달하였다고 한다.
이 정도로 일반 농사가 발달한 때이므로 원예 작물도
어느 정도 재배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이를 입증할 만한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
삼국 시대에 들어서는 철제 농구가 일반화되고
관개용 저수지가 있을 정도로 농업이 발달하였다.
『주서』의 이역전에 따르면 백제 채소는
그 종류가 중국과 대등함을 지적하고 있으며,
『수서』에도 신라 과수와 채소가 모두 중국과 비슷하다고 기술하고 있다.
한편 농업에 관한 최고의 고전인 『제민요술』은 6세기 중반에 저술된 책인데,
북위는 만주에서 세력을 떨치던 선비족 일파가 중국 북부에 세운 나라로
그 문화는 고구려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하며,
특히 『제민요술』은 그 무대가 한반도와의 교류가 많았던 산동반도였다고 한다.
따라서 북위의 『제민요술』이 한국 농업에 끼친 영향 등을 고려할 때
여기에 수록된 많은 종류의 작물과 그 재배법이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으로 보인다.
『제민요술』에 수록된 원예 작물 중 채소류로는
아우크 상추 배추 미나리 마늘 부추 파 산마늘 양파
참외 오이 동아 가지 박 순무 토란 토란 토란 고구마 등이 있으며
과실류로는 겨자 먹기 밥 개암 감초 가유 사과 등이 있다.
이 중 삼국시대에 재배되었다는 사실이 문헌상에서 입증된 것으로는
박·상추·가지·오이·참외·쥐참외·마늘·삼베 등의 채소류와
밤·잣·꽃배·귤류·복숭아·오얏나무 등의 과수를 들 수 있다.
한편 『제민요술』에는 여러 가지 김장 방법이 설명되어 있으며,
정창원 문서 등에도 각종 김장 방법이 기록되어 있다.
일본의 김치는 백제인들에 의해 전수되었다고 하며,
일설에 의하면 법주사 경내에 있는 돌독이 통일신라시대인
760년(경덕왕 19)에 설치되어 김치독으로 사용되어 온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 이 시대에 김치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당시 우리나라에는 배추가 들어오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며
고추는 훨씬 늦게 조선 중기에 들어선 것을 감안하면
이 시대의 김치는 배추가 아닌 다른 채소를
소금에 절여 먹는 정도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김치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채소의 종류는
당시 중국과 일본의 김치 재료로 미루어 볼 때
아욱·히메부추·무·가지·동아·파·미나리·생강 등을 들 수 있다.

한국의 화훼 재배는 삼국시대부터 시작되었다.
390년(진사왕 6) 궁실에서 꽃을 길렀다는 궁중원예에 관한 기록이 있고,
674년(문무왕 14) 안압지를 축조한 것과
궁궐에 화초를 심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나와 있다.
이 당시 화훼 재배는 산과 들에 자생하는 화초류를 심어 기른 것에 불과하며,
진정한 화훼 원예의 시작은 백제 국화 재배, 신라 모란 재배 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특히 모란은 632년(선덕여왕 1)
중국 당 태종으로부터 모란꽃 그림과 함께 종자가 전래되어 심었다고 하며,
신라 말기 최치원이 각 절을 돌며 모란을 심었다는 고사도 있다.
고려 시대의 원예
왕건은 국토를 통일한 뒤 스스로 솔선수범하여 권농정책을 시행하였다.
따라서 원예도 고려 시대에 이르러 일반 농사의 발전과 함께 상당한 진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숙종 때에는 참외 재배가 매우 성행하였고,
도성 밖에서는 무덤 주위로 채소 꾸러미가 확대되었다고 하니
당시 채소 재배가 얼마나 성행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선비들도 채소 재배에 관심이 많았던 것처럼 시가에 채소밭이 나왔고,
『동국이상국집』에도 참외·가지·순무·파·아욱·박 등
6가지 채소의 형태와 이용 방법을 시로 읊은 것이 실려 있다.
한편 고려 후기 발간된 『향약응급방』에 몇 가지 채소의 이름이 나타난다.
특히 이 책은 한국 문헌 중 배추가 기록되어 있는 가장 오래된 서적이다.
따라서 13세기 초 배추가 우리나라에서 재배되었음이 입증된다.
배추가 『제민요술』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가
13세기보다 다소 앞선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당시 배추는 오늘날과는 다른 원시형이었을 것이며
재배도 일반화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이 책에는 상추와 우엉이 처음 나타나는데,
통일신라시대에 우리나라 상추가 청나라에까지 명성이 있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이보다 훨씬 앞서 도입된 것으로 생각된다.
우엉도 이보다 먼저 이용된 것 같다.
수박의 도입 연대는 1502년(연산군 8)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도문대작』에 따르면 고려시대 홍다구가 처음 개성에 심었다고 한다.
이 밖에 쑥갓·연근·도라지·삼베·토란·시금치·죽순 등도
중국 재배 기록과 일본에서의 도입 연대로 보아
고려 시대에 재배된 것으로 추정해도 좋을 듯하다.
한편 『고려사』식화지에 1188년(명종 18) 왕이
"곡물뿐만 아니라 밤·잣나무·배나무·대추에 이르기까지
때맞춰 심어 열매를 얻도록 하라."고 지시한 사실이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 중기부터 과수 재배를 적극 권장한 것으로 판단된다.
『고려도경』과 『향약응급방』에는 이러한 4종류 외에
앵두·개암·비자·눈금·오얏·복숭아·배·대추·감·호두·포도 등이 수록되어 있다.
한편 귀족이나 부잣집 마당에는 다양한 화훼류를 기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 시대에 도입된 화훼류로는 석류·작약 등이 있으며,
특히 고려 충숙왕 때 여러 품종의 모란과 서향화가 수입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시대의 원예
조선 초기에는 국정이 안정된 가운데 농업이 발전하였으나
연산군 폭정 이래 200여 년 동안 외적의 침공, 내란, 흉년 등으로 민생이 이탄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중국 및 일본과의 내왕이
잦아짐에 따라 외국 작물의 도입이 시작되었다.
즉 고추·호박·담배 등이 선조·광해군 때 일본 또는 중국에서 전래되었고,
토마토도 이때 전래되었으나 풍미가 맞지 않아 재배되지 않았던 것 같다.
조선 후기 영조·정조 때는 농업 부흥을 위해 권농 정책을 펼쳤고,
농업 서적도 많이 발간하였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주 들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