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학자들의 명언 모음 @

2023. 9. 18. 07:28잡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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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자 [孔子, BC 551 ~ BC 479]

 

공자는 기원전 551년에 중국 노나라에서 태어났다. 원래의 이름은 공구, 이후에는 공부자 또는 공자라는 칭호를 얻었다. 공자는 원래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으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말단 관리로 일했다. 그 외의 공자에 관한 생애는 잘 알려지지 않는다. 그는 학문에 정진하였고 주나라의 관리가 되었으며 통치자들에 대한 그의 제안이 무시되어 관직을 그만두고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에만 집중하였다. 평생을 교육자로서 곳곳을 돌아다녔고 말년에는 고향으로 돌아와 그곳에서 479년 세상을 떠났다. 주요저서는 기원전 5세기에 논어, 중용, 대학 등이 있다.

 

상처는 잊되, 은혜는 결코 잊지 말라.

한 사람에게서 모든 덕을 구하지 말라.

허물이 있다면, 버리기를 두려워 말라.

절약하지 않는 자는 고통 받게 될 것이니라.

앞날을 결정짓고자 하면 옛것을 공부하라.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過猶不及 / 과유불급)

스스로 존경하면 다른 사람도 그대를 존경할 것이니라.

흠 없는 조약돌보다는 흠 있는 금강석이 더 나으니라.

충성과 신의를 첫 번째 원칙으로 지켜라.

자기보다 못한 자를 벗으로 삼지마라.

늘 행복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자주 변해야 한다.

강직과 의연함, 소박함과 겸손함은 인()에 가까우니라.

 

멈추지 않으면 얼마나 천천히 가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느니라.

실수를 부끄러워 하지말라, 실수를 부끄러워하면 그것이 죄가 되느니라.

들은 것은 잊어버리고, 본 것은 기억하고 직접 해본 것은 이해한다.

자기 가족을 가르칠 수 없는 자는 남을 가르칠 수 없느니라.

산을 움직이려 하는 이는 작은 돌을 들어내는 일로 시작하느니라.

좋아하는 직업을 택하면 평생 하루도 일하지 않아도 될 것이니라.

보복의 길을 떠나기 전에는 두 개의 무덤을 파야 하느니라.

모든 것이 저만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으나 모든 이가 그것을 볼 수는 없느리라.

겸손함이 없이 말하는 이는 말을 잘 하는 것이 어려움을 알게 될 것이니라.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지식이란 무릇 알면 적용하고, 모르면 모름을 인정하는 것이니라.

능력은 그 수요를 결코 충족시킬 수 없을 것이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진정한 앎은 자신이 얼마나 모르는 지를 아는 것이니라.

사람과 짐승은 소소한 차이가 있을 뿐이고, 대부분의 사람은 그 차이조차 없다.

군자는 말은 어눌해도 행동에는 민첩하다.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나니 반드시 이웃이 있다.

가장 현명한 이들과 가장 어리석은 이들은 바뀌지 않느니라.

 

 

예절의 법칙을 제대로 알지 않고서 인격을 쌓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장 큰 영광은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음이 아니라 실패할 때마다 다시 일어서는 데에 있다.

원한은 강직으로 갚고, 은덕은 은덕으로 갚아야 하느니라.

멀리 내다보지 않으면 가까운 곳에 반드시 근심이 있다.

사람의 천성은 서로 비슷하지만, 습성으로 서로가 멀어지느니라.

사람의 천성은 서로 비슷하지만, 습성으로 서로가 멀어지느니라.

교묘한 말과 간사한 외모는 진정한 어짐과는 거리가 먼 것이니라.

선비로서 편안한 처소를 그리워한다면 선비로 여길 수 없느니라.

군자는 마음이 평안하고 차분하나, 소인은 항상 근심하고 걱정한다.

 

과오를 범하고 고치지 않는 자는 (또 다른) 과오를 범하고 있는 것이니

인덕이 어디 멀리 있는 것인가? 내가 어질고자 하면, 어짐에 이르느니라.

군자는 말하고자 하는 바를 먼저 행하고, 그후에는 자신이 행함에 따라 말하느니라.

백성들은 행함의 길을 따르게 할 수는 있으나, 알게 할 수는 없느니라.

이미 끝난 일을 말하여 무엇하며 이미 지나간 일을 비난하여 무엇하리.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로우니라

올바른 원칙을 알기만 하는 자는 그것을 사랑하는 자와 같지 않으니라.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로우니라.

어진 사람은 어려움을 (이겨내는 일을) 우선으로 삼고, 얻음을(성공하는 것을) 다음으로 여기니라.

군자는 자신에게서 구하고, 소인은 남에게서 구한다.

후학들을 존중하라. 그들의 미래가 우리의 현재와 같지 않을지 어찌 아는가?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이 참으로 아는 것이다.

어진 사람을 보면 그와 같이 되기를 생각하고, 어질지 않은 사람을 보면 속으로 스스로 반성하라.

군자는 세상에서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이 없이 오직 옳은 것을 따를 뿐이다.

 

나는 앎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아니다. 옛 것을 좋아해 그것으로 부지런히 탐구해 온 사람이다.

어진 사람을 보면 그와 같이 되기를 생각하고, 어질지 않은 사람을 보면 속으로 스스로 반성하라.

 

덕으로 정치를 하는 것은 북극성은 제자리에 있고 여러 별이 그 주위를 도는 것과 같으니라.

산 사람도 제대로 섬기지 못하는데 어찌 귀신을 섬기겠는가? 삶도 아직 모르는데 어찌 죽음에 대해 알겠느냐?

나는 어짐을 좋아하는 사람과 어질지 못함을 미워하는 사람을 아직까지 보지 못하였다. 어짐을 좋아하는 자는 더할 나위가 없으리라.

뜻있는 선비와 덕이 있는 사람은 덕을 해하며 살려 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삶을 희생하여 덕을 지켜낼 것이다.

마음에 물처럼 스며드는 은근한 참언이나, 몸에 느껴질 듯 절박한 하소연이라도 버려버리면 진정 현명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느니라.

 

군자는 작은 일은 몰라도, 큰 일은 맡을 수 있고, 소인은 큰 일은 맡을 수 없으나 작은 일은 잘 알 수 있느니라.

거친 밥 먹고 물 마시고 팔베개하고 누워도 즐거움이 또한 그 가운데 있나니 의롭지 않게 얻은 부와 명예는 내게는 뜬구름과 같음이다.

()를 보고 의()를 생각하며, 위태한 것을 보고 목숨을 내어 주며, 오랜 약속을 잊지 아니하는 사람이야말로 완전한 인간이라 할 수 있다.

노여움이 일면, 그 결과를 생각하라.

내가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행하지 말라.

어질지 않은 사람을 보면, 속으로 스스로 반성하라.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 하지 않음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지혜가 넘치더라도 덕이 없다면 (권력을) 얻어도 반드시 잃을 것이다.

 

2. 헤라클레이토스 [Heraclitus of Ephesus, BC 540? ~ BC 480?]

 

헤라클레이토스는 기원전 6세기 말 고대 그리스 사상가로 소크라테스 이전 주요 철학자 중의 한명이다. 만물의 근원을 불이라고 주장했고 대립물의 충돌, 조화, 다원성, 통일성의 관계, 로고스 등에 대해 주목했다. 만물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그의 신념은 전형적으로 만물을 변하지 않는 본질로 정하는 탈레스, 아낙시메네스같은 밀레투스 학파 철학자들의 사상과 차이를 보인다.

 

무슨 일이든지 한 가지 일에 성공하려면 다른 일은 생각하지마라.

인격은 그 사람의 운명이다.

많은 공부와 지식이 곧 지혜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우주는 일정한 패턴으로 말한다.

예상할 수 없는 것을 예상하라.

만물은 유전한다.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

장애가 이익을 만들어 낸다.

연관 없는 것들이 만나 조화를 이룬다.

만물이 연기라면 코로 만물을 분간할 것이다.

한계가 지혜를 낳는다.

지혜를 얻으려면 마음을 열어라.

해가 져야 저녁별을 볼 수 있다.

피곤을 모르면 달콤한 휴식도 모른다.

올라가는 길과 내려오는 길은 하나이며 같다.

자만은 몰락의 징조다.

태양은 날마다 새롭다.

 

3. 소크라테스 [Socrates, BC 469? ~ BC 399]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469년 아테네에서 조각가 아버지, 산파술을 가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처음에는 아버지를 따라 조각 일을 했는데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참전하여 공을 세운 이후에는 아테네로 돌아와 정치학에 몰두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는 일을 하지 않고도 아내 크산티페와 살만큼의 충분한 돈을 물려받았는데 소크라테스는 그때부터 동료들과 철학적 토론을 벌였고 아테네에는 그를 따르는 제자들을 넘쳐났다. 그러나 그가 젊은이들의 마음을 타락시켰다는 비난으로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결국 사형선고까지 받게 되었다. 그를 살리려는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그는 도피하거나, 추방당할 선택권도 있었지만 유죄평결을 스스로 받아들였고 399년 독미나리로 만든 독약을 마시고 세상을 떠났다. 주요저서로는 그의 제자였던 플라톤이 저술한 수많은 대화편, 소크라테스의 변명 등이 있다.

 

무지를 아는 것이 곧 앎의 시작이다.

유일한 선은 앎이요, 유일한 악은 무지이다.

죽음은 인간이 받을 수 있는 축복 중 최고의 축복이다.

가장 적은 것으로도 만족하는 사람이 가장 부유한 사람이다.

살기 위해서 먹어야지 먹기 위해서 살아서는 안 된다.

토론이 끝나면 패자는 중상모략을 하기 마련이다.

자신을 화나게 했던 행동을 다른 이에게 행하지 말라.

나는 가장 적은 욕심을 가졌으므로 신에 가장 가까운 존재이다.

나는 아테네인도 아니요, 그리스인도 아니다. 나는 세계의 시민이다.

악인은 먹고 마시기 위해서 살고, 선인은 살기 위해 먹고 마신다.

 

사탕 발린 칭찬이 아닌 분별 있는 애정의 증표로 친구를 사귀어라.

훌륭한 평판을 받는 법은 자신이 드러내고자 하는 모습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영예롭게 사는 가장 위대한 길은 우리가 표방하는 모습이 되는 것이다.

부자가 재산을 자랑하더라도 그 부를 어떻게 쓰는가를 알기 전에는 칭찬하지 마라.

모든 언행을 칭찬하는 자보다 결점을 친절하게 말해주는 친구를 가까이 하라.

반드시 결혼하라. 좋은 아내를 얻으면 행복할 것이다. 악처를 얻으면 철학자가 될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폭군과도 같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대들고, 게걸스럽게 먹으며 스승을 괴롭힌다.

 

인간사에는 안정된 것이 하나도 없음을 기억하라. 그러므로 성공에 들뜨거나 역경에 지나치게 의기소침하지 마라.

 

 

떠날 때가 되었으니, 이제 각자의 길을 가자. 나는 죽기 위해서, 당신들은 살기 위해. 어느 편이 더 좋은 지는 오직 신만이 알 뿐이다.

나는 시인이 시를 쓸 수 있는 것은 현명함 때문이 아니라, 그 의미를 전혀 알지 못하면서도 고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예언자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직관 혹은 영감 덕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당신이 가질 수 있는 보물 중 좋은 평판을 최고의 보물로 생각하라. 명성은 불과 같아서 일단 불을 붙이면 그 불꽃을 유지하기가 비교적 쉽지만, 꺼뜨리고 나면 다시 그 불꽃을 살리기가 지난하기 때문이다. 좋은 평판을 쌓는 방법은 당신이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바르게, 아름답게, 정의롭게 사는 것은 결국 모두 똑같은 것이다.

 

4. 에우리피데스 [Euripides, BC 484? ~ BC 406?]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시인의 한사람으로서 사티로스극 <키플로프스>를 비롯한 19편의 작품이 전해지는데 아이러니를 내포한 합리적인 해석, 새로운 극적 수법 등의 비극에 있어서 업적을 이루어내었다. 인간의 정념을 주제로 하였고 여성 심리 묘사에 매우 뛰어났다. 당시로서는 매우 대표적인 진보적 사상가의 한 사람이었으며 그리스 비극은 그로 인해 커다란 변화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젊었을 때 배움을 게을리 한 사람은 과거를 상실하며 미래도 없다.

남자의 가장 훌륭한 재산은 공감해주는 아내이다.

시간은 묻지 않았지만 말을 해주는 수다쟁이이다.

 

5. 히포크라테스 [Hippocrates, BC 460? ~ BC 377?]

 

히포크라테스는 그리스의 의학자였고 현대에는 의사의 아버지라 불린다. 인체의 생리, 병리를 체액론에 근거해 사고하여 병을 낫게 하는 것은 자연이다라는 설을 치료 원칙의 기초로 삼아 의학의 발전에 시초로 손꼽힌다. 기원전 460년 에개해 남동쪽 코스섬에서 태어났으며 마술사 집안이었음에도 아버지에게서 의학의 실제에 대해 배우면서 소아시아, 그리스, 이집트를 여행하며 견문을 넓혔다. 그의 히포크라테스 전집은 히포크라테스의 언설을 편집한 것뿐만 아니라 그의 가르침을 받았던 제자, 의학도들에 의해 내용이 추가되었다. 그는 병적 상태에서 회복되어가는 것을 피지스(Physis)’라고 불렀고 병을 낫게 하는 것은 자연이다라는 설을 세워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피지스를 돕거나 적어도 이것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 치료의 원칙이라고 생각했다. 의사의 윤리에 대해서도 중요한 가르침을 전파하였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존경받는다.

 

허송세월하며 할 일이 없는 사람은 악()으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기울어진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기회는 덧없이 흘러가 버리고 시도는 불확실하며 판단은 어렵다.

자연이 치료하고 의사는 이것을 보완할 뿐이다.

음식을 당신의 의사나 약으로 여겨라.

 

 

6. 데모크리토스 [Democritos, BC 460? ~ BC 370?]

 

기원전 5세기 말부터 기원전 4세기 초까지 활약했던 고대 그리스 사상가이다. 원자론을 체계화하였으며 유물론의 형성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그리스 북동부 트라케 연안의 아브데라에서 태어났는데 아브데라는 이오니아 지방의 고대 철학과 근동의 사상이 모여든 곳으로 데모크리토스의 성장과 사상 형성에 영향을 끼쳤다.

 

그는 철학뿐만 아니라, 문학, 천문학, 수학, 물리학, 의학, 농업, 지리학, 역사, 윤리학 등 다양한 분야를 연구했기 때문에 박학자로 불렸다. 그는 원자로써 세상의 모든 만물을 설명했는데 그의 원자론은 만물의 근원을 물질로 바라보는 유물론의 고전적 출발점이다. 레우키포스가 고대 원자론의 창시자라 한다면 그는 이를 보다 더 체계적으로 완성시켰는데 그에 의하면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원자는 내부에 빈공간이 없을만큼 충만하고 꽉 찬 것이며 생성, 소멸을 겪지 않는 변하지 않는 존재이다.

 

청년기의 자존심은 혈기와 아름다움에 있지만, 노년기의 자존심은 분별력에 있다.

옛날처럼 지금도 신들은 인간에게 해롭고 무익한 것이 아니라 좋은 일을 준다. 그러나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그 좋은 일들은 신들의 선물이 아니다. 인간의 무지와 우직함으로 인해 우연히 마주치는 일들이다.

말은 행실의 그림자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유명해져라.

땅의 선물은 계절을 기다려야 하지만, 우정의 열매는 언제든지 수확할 수 있다.

 

 

7. 플라톤 [Plato, BC 428/427 ~ BC 348/347]

 

플라톤의 저서는 많이 남아있지만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진 것이 없다. 그는 기원전 427년경 아테네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고 원래의 이름은 아리스토클레스였는데 넓다는 뜻의 플라톤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그는 정치계에 몸담으려고 했지만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되었다.

소크라테스가 사형선고를 받자 그는 아테네에 환멸을 느끼게 되었고 그것을 떠났다고 한다. 기원전 385년 아테네로 돌아온 그는 아카데미를 설립했는데 세상을 뜰 때까지 아카데미의 학장이 되었고 소크라테스가 했던 말들을 토대로 철학사의 고전이 된 수많은 대화편을 남겼다.

 

친구는 모든 것을 나눈다.

교육이 한 인간을 양성하기 시작할 때의 방향이 훗날 그의 삶을 결정할 것이다.

겉모습이란 속임수이다.

국가란 인간이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국가도 인간처럼 가지각색의 성격으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남에게 어떠한 행동을 하였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행복도 결정된다. 남에게 행복을 주려고 하였다면 그만큼 자신에게도 행복이 온다.

 

남의 말을 열심히 듣는 사람은 말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진실한 벗과 같다.

성한 곳은 놔두고 상처 부위만을 노리는 파리떼처럼, 악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장점은 무시한 채 단점만 찾으려고 혈안이 된다.

사람은 사랑할 때 누구나 시인이 된다.

사랑이라는 것은 선한 것을 언제까지나 갖고 싶어하는 마음이다.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정답은 없다.

올림픽 경기에서 우승하는 것보다 평생을 두고 국법을 잘지켰다는 명성을 얻는 사람이 오히려 훌륭하다.

육체에서 비롯되는 쾌락의 상태가 줄어들면 들수록 그만큼 대화의 즐거움과 매력은 커지는 것이다.

 

자제는 최대의 승리이다.

재판관은 젊어서는 안 된다. 판관은 자기의 이성의 판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타인의 악의 본질을 오랫동안 관찰함으로써 그 악을 배워 알아야만 한다. 지식이라는 것은 그의 안내역이 되어야 하며, 개인적인 체험이 되어서는 안 된다.

철학자가 통치자이고, 통치자가 철학자인 국가는 행복하다.

철학자는 바다 속의 커다란 가오리와 같은 존재이다. 접근해서 만져보려고 하면 언제나 깊이 잠들어 버린다.

최대의 승리는 자기 자신을 정복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정복당하는 것은 최대의 수치이다.

삶이란 얻기 위해 잃어가는 것이다.

우리가 배움이라 부르는 것은 오직 기억의 과정일 뿐이다.

 

 

8.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le, BC 384 ~ BC 322]

 

오늘날의 그리스 북동지역에 위치한 칼키디케 반도의 작은 도시 스타기라에서 태어난 그는 마케도니아 왕실 주치의의 아들이었고 귀족계급으로 교육을 받았다. 17세에는 아테네에 있는 플라톤의 아카데미에 들어가 20년 동안 학생, 교사로써 지냈는데 플라톤이 세상을 떠나자 아테네를 떠나 이오니아로 옮겨가 야생동물을 연구했다.

그 후 마케도니아 궁정의 가정교사로 임명되어 어린 알렉산더를 가르치면서 연구를 계속했는데 알렉산더 대왕의 권유로 기원전 335, 리케이온이라는 학교를 세웠다. 그는 그곳에서 저술활동에 전념했고 알렉산더가 세상을 뜨자 아테네에서 마케도니아에 대한 반감이 급속히 일어났고 그는 유비아섬의 칼키스로 피신하여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모든 이해는 먼저 감각에서 시작된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을 그와 동일시 하는것 이다.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자식을 더 사랑하는 이유는 아이가 자기 자식임을 더 확신하기 때문이다.

젊음은 희망을 빨리 갖기 때문에 그만큼 쉽게 현혹된다.

탁월하다는 것은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탁월해지기 위해, 이를 발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제비 한 마리가 왔다고 여름이 온 것은 아니다.

좋은 인간이 되는 것과 좋은 시민이 되는 것이 항상 같은 것은 아니다.

어떤 생각에 동의하지 않고도 그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것이 교육 받은 사람의 특징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어떤 방식으로 행동함으로써 특정한 자질을 습득한다. 올바른 행동을 하면 올바른 사람이, 절도 있는 행동을 하면 절도 있는 사람이, 용감한 행동을 하면 용감한 사람이 된다.

친구는 제 2의 자신이다.

누구에게나 친구는 어느 누구에게도 친구가 아니다.

실패하는 길은 여럿이나 성공하는 길은 오직 하나다.

불행은 누가 진정한 친구가 아닌지를 보여준다.

약간의 광기도 없는 위대한 천재란 있을 수 없다.

 

교육은 노후를 위한 최상의 양식이다.

교육은 노후로 가는 여행을 위한 최상의 양식이다.

불가능해 보이는 것은 불확실한 가능성보다 항상 더 낫다.

탁월하다는 것은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탁월해지기 위해, 이를 발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시작이 반이다.

희망은 백일몽이다.

시간은 만물을 스러지게 한다. 만물은 시간의 힘 아래 서서히 나이 들고 시간이 흐르면서 잊혀진다.

우리가 할 수 있기 전에 배워야 하는 일들을, 우리는 하면서 배운다.

 

스승은 부모보다 더 존경받아야 한다, 부모는 생명을 준 것 뿐이지만 스승은 잘 사는 기술을 주었기 때문이다.

친구란 무엇인가? 두 개의 몸에 깃든 하나의 영혼이다.

아첨꾼은 나보다 열등하거나 그런 척 하는 친구이다.

모든 것을 가졌다 해도 친구가 없다면, 아무도 살길 원치 않을 것이다.

모든 인간의 행동은 기회, 천성, 충동, 습관, 이성, 열정, 욕망의 일곱 가지 중 한 가지 이상이 그 원인이 된다.

 

이상적인 인간은 삶의 불행을 위엄과 품위를 잃지 않고 견뎌내 긍정적인 태도로 그 상황을 최대한 이용한다.

제비 한 마리가 왔다고 여름이 온 것은 아니요, 날씨가 하루 좋았다고 여름이 온것은 아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루 또는 짧은 시간의 행복이 그 사람을 완전히 행복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행위는 기회, 본성, 강제, 습관, 이성, 분노, 욕구 등의 7가지 원인 중 한 개 이상의 원인에서 비롯된다.

 

 

9. 맹자 [孟子, BC 372? ~ BC 289?]

 

중국 전국시대의 유교 사상가. 전국시대에 배출된 제자백가의 한 사람이다. 공자의 유교사상을 공자의 손자인 자사의 문하생에게서 배웠는데 도덕정치인 왕도를 주장하였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적인 주장이라고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후 고향에 은거하면서 제자교육에 전념하다가 생을 마감하였다. 맹자 7은 맹자의 말을 모은 후세의 편찬물로 맹자의 사상을 그대로 담고 있다. 맹자의 사상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책으로 전국시대의 양상을 들여다볼 수 있기도 하다.

 

정성을 다하는 것이 곧 천도(天道).

천만 명이 가로막는다고 하여도 나는 가리라.

 

 

10. 에피쿠로스 [Epikouros, BC 342? ~ BC 271]

 

그는 에게해의 사모스 섬에서 아테네인 부모 아래 태어나 플라톤의 한 제자에게서 철학을 처음 배우게 되었다. 323년 알렉산더 대왕이 사망하고 정치적 갈등의 시기가 도래하자 그의 가족과 함께 콜로폰으로 이주했다. 거기서 데모크리토스의 제자 나우시파네스와 함께 학업을 이어갔다.

기원전 306년 아테네로 옮겨가기전 레스보스섬의 미틸레네, 그리스 본토의 람프사쿠스에서 교육자로 활동했고 더 가든이라는 학교를 세우고 친구, 추종자들의 공동체 모임을 구성해 그곳에서 그는 쾌락주의 사상을 기록하고 가르쳤다. 그의 사상은 몇 세기동안을 주류 철학에 밀려있었으나 18세기 제러미 벤담, 존 스튜어트 밀의 사상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내었다. 쾌락주의 사상은 모든 인간은 생명, 자유, 그리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유한다.”라는 미국 독립선언문에 반영되었다. 또한 그는 원자론 철학자 데모크리토스, 레우키포스가 주장했던 우주 전체는 원자나 빈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관점을 받아들였다.

 

못 가진 것에 대한 욕망으로 가진 것을 망치지 말라. 하지만 지금 가진 것이 한때는 바라기만 했던 것 중 하나였다는 것도 기억하라.

행복으로 향하는 길은 단 하나 밖에 없다. 그것은 뜻대로 되지 않는 일에 대한 생각이나 고민을 그만 두는 것이다.

보다 큰 장애물을 극복할수록 많은 영광이 따른다. 훌륭한 비행사는 폭풍우를 겪은 뒤에야 명성을 얻게 된다.

가장 큰 행복은 친구와 우정을 나누는 것이다.

어려움이 클수록 극복하면 더 큰 영광이 온다.

정의로운 말이나 행동은 타인의 알아줌을 떠나서 정의의 본성을 유지한다.

정의란 서로 해를 끼치지 않고 해를 입지 않기 위한 상호 간의 계약이다.

사려 깊고 아름다우며 정직하게 살기 위한 자신만의 원칙을 가진 사람은 행복하다.

 

11. 키케로 [Marcus Tullius Cicero, BC 106 ~ BC 43.12.7]

 

고대의 문인, 철학자, 변론가, 정치가였다. 보수파 정치가로서 카리사르와 반목하여 정계에서 쫓겨나 문필에 종사하였다. 카이사르 암살 뒤 안토니우스를 탄핵했고 그 후 원한을 사서 안토니우스의 부하에게 암살되었다. 수사학의 대가로 손꼽히며 고전 라틴 산문의 창조자이다. 그가 그리스 사상을 로마로 도입시켰고 그리스어를 번역한 뒤 새로운 라틴어를 만들어 사상전달의 필수 무기로 삼은 공적은 매우 큰데 현존하는 작품으로는 카틸리나 탄핵, 국가론, 법에 관하여, 투스쿨라나룸 담론, 신에 관하여, 의무론, 노년론, 우정에 관하여 등이 있다.

 

 

타고난 능력 없이 교육만 받은 이보다, 교육 받지 않았으나 타고난 능력이 있는 이가 영예와 미덕을 얻은 경우가 더 흔하다.

운명의 기복은 친구의 신뢰를 시험한다.

우정은 풍요를 더 빛나게 하고, 풍요를 나누고 공유해 역경을 줄인다.

책 없는 방은 영혼 없는 육체와도 같다.

 

우정에서 가장 소중한 장식을 없애는 것은 바로 우정에서 존경심을 제거하는 것이다.

사랑을 두려워하는 것은 삶을 두려워하는 것과 같으며, 삶을 두려워 하는 사람은 이미 세 부분이 죽은 상태다.

정신이 명료함은 열정도 명료함을 뜻한다. 때문에 위대하고 명료한 정신을 지닌 자는 열정적으로 산다.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12. 세네카 [Seneca BC4~AD65]

 

루키우스 세네카는 이탈리아 고대 로마제정기의 스토아 철학자이다. 네로의 과욕에 위태로움을 느꼈고 62년 네로에게 간청한 뒤에 관직에서 은퇴하였는데 65년 네로에게 역모를 의심받았고 스스로 혈관을 끊고 자살했다. 그는 스스로 세속에 물들었지만 끝내 인간이 인간다운 까닭은 올바른 이성 때문이라는 것을 유일의 선, 덕을 목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라고 하였고 모순, 불안 속에서 인생을 보냈다. 스토아주의를 역설했고 주요 저서는 노여움에 대하여, 자연학 문제점 등이 있다.

 

약간의 광기를 띠지 않은 위대한 천재란 없다.

어떤 재능 혹은 다른 재능으로 뛰어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라.

때로는 살아있는 것조차도 용기가 될 때가 있다.

당신이 행한 봉사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라. 허나 당신이 받았던 호의들에 대해서는 이야기하라.

잘못된 열정을 통제하는 것보다는 배제하는 것이, 잘못된 열정에 휩싸인 후에 마음을 다잡는 것보다는 휩싸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쉽다.

 

13. 에픽테토스 [Epictetus, 55? ~ 135?]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고대 그리스 로마 철학자이다. 노예 출신이었지만 이를 극복했고 후기 스토아학파의 대가가 되었다. 인간의 내적 자유에 대한 고찰로 스토아 철학의 윤리학을 발전시키는 데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그는 인간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외적세계와 내적세계로 나누었는데 자연재해, 육체의 건강과 질병, 사회적 지위, , 전쟁 등은 외적으로 이미 결정되어 주어진 것들이기 때문에 개인의 선악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에 반해 믿음, 욕구, 충동, 혐오, 행동의 선택 들은 개인의 의지와 자유가 작용하는 영역 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생애에서 노예에서 자유민이 되기까지 험난했던 삶의 경험을 반영시켜 이간의 진정한 자유가 외부조건이 아니라 인간 내부에 존재한다고 보았다.

 

축제에서 처신하듯 인생에서 처신해야 함을 명심하라.

내적 평온으로 가는 가장 확실한 길은 각각의 사물에 관하여 올바른 관념을 형성하는 데에 있다.

먼저, 자기자신의 주인이 되지 않고서는 누구도 자유인이 될 수 없다.

쾌락에 저항하는 사람은 현자이지만, 쾌락의 노예가 되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이다.우리의 의지를 벗어난 것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결코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인간의 참된 가치는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었느냐에 달려 있다.

 

14.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Marcus Aurelius Antoninus, 121.4.26 ~ 180.3.17]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제국의 제16대 황제로 5현제의 마지막 형제로 스토아파의 철학자이다. 경제적, 군사적으로 어려운 시기였으며 페스트의 유행으로 제국이 피폐하여 그가 죽은 뒤 로마제국은 더욱더 쇠퇴하였는데 그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 갖가지 사색 속에 위대한 사상들이 탄생하였다. 그에 의하면 사람은 외적인 어느 것에도 마음을 괴롭히는 일이 없이 죽음의 운명을 감수해야 하고, 내적으로 자유롭고 명랑하고 조용하고 경건히 죽음의 날을 기다리며 살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에게 있어서 철학자와 황제는 별개의 것이었는데 그의 저서 명상록은 스토아적 적 철학자, 황제의 격무라는 모순 속에서 고민하는 한 인간의 고독이 담겨있다.

 

미래가 그대를 불안하게 하지 말라. 해야만 한다면 맞게 될 것이다. 현재에 맞서 오늘 그대를 무장시키는 이성이라는 동일한 무기가 함께 할 것이다.

 

위인이나 위인의 조건에 대한 논쟁으로 시간을 낭비말라. 스스로 위인이 되라.

 

15. 쇼펜하우어 [Arthur Schopenhauer, 1778.2.22 ~ 1860.9.21]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던 아르투르 쇼펜하우어는 아버지와 같은 상인이 되라는 기대를 받았지만 1793년 가족이 함부르크에 정착하기 전 프랑스, 영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아버지가 죽고 나자 장사 일을 그만두고 그는 대학에 가서 철학, 심리학을 공부했다. 그의 성과를 평생 비난했던 어머니로 인해 평생 여성혐오증을 가졌고 어머니와 껄끄러운 관계로 살았다.

한편 학업을 마친 그는 베를린 대학 강사가 되었고 몇 차례 연애에 빠졌지만 결혼은 하지 않아 바람둥이라는 평판도 얻었다. 어떤 여자를 폭행해 유죄를 선고받은 경험도 있다. 1831년 프랑크푸르트로 이주한 그는 아트만과 부츠라는 푸들을 차례로 키우면서 여생을 보냈다. 칸트의 형이상학을 출발점으로 삼았던 그는 자신만의 세계관을 발전시켰고 현상계, 본체계의 본질을 설명하고 싶어 하였다. 그의 철학에는 염세주의적인 색채가 짙은데 그에게 있어서 인간은 우주의 맹목적 의지에 휘둘린다고 생각하였다. 인간은 의지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며 비존재가 되거나 만족을 좇는 의지를 줄여야만 적어도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때문에 인생에서 심미적 관조, 음악 등으로 인생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는데 이런 그의 철학은 불교의 성격과도 비슷하다. 그의 주요저서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여록과 보유 등이 있다.

 

우리 지식과 학습의 기반은 설명할 수 없다.

허영심은 사람을 수다스럽게 하고, 자존심은 우리를 침묵하게 한다.

돈 빌려 달라는 것을 거절함으로써 친구를 잃는 일은 적지만, 돈을 빌려줌으로써 도리어 친구를 잃기는 쉽다.

돈이란 바닷물과도 같다. 그것은 마시면 마실수록 목이 말라진다.

들척지근한 형이상학적 철학은 믿지 말라. 책을 넘길 때마다 눈물이 흐르는 소리, 고통의 신음소리, 그리고 서로에 대한 일반적인 살인이라는 끔찍한 비명 소리가 들리지 않는 철학은 철학이 아니다.

명예는 밖으로 나타난 양심이며, 양심은 내부에 깃든 명예이다.

보통 사람은 시간을 소비하는 것에 마음을 쓰고, 재능있는 사람은 시간을 활용하는 것에 신경을 쓴다. - 쇼펜하우어

 

사나이의 애정은 자신이 육체적 만족을 취한 순간부터 급격하게 떨어진다. 다른 여자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그가 소유한 여인보다 많은 매력을 가진 듯이 생각되어 그는 변화를 추구한다. 그것과는 반대로 여인의 애정은 이 순간부터 증대한다.

 

사람이 동물이 아니라면 동물이 사람이다. 서양에서 인간들은 더 이상 자신의 형제를 인정하지 않는다. 인간들은 터무니없게도 동물이 자신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런 착각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인간들은 동물을 짐승이라고 부른다. 또한 그런 짐승에 관하여, 인간들과 공통되게 동물들이 지니고 있는 생식 기능에 욕에 버금가는 명칭을 붙여준다. 인간들은 동물들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존재라 주장하며, 동물과 인간이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주는 증거를 철저히 무시하며 살아간다.

 

사람이 우스꽝스럽게 보이거나 초라해 보인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사람의 인격을 존중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사람의 영혼이란 누구나 같기 때문이다.

세상의 본질은 짝을 지으려는 의지적 행위이다. 그것이 바로 모든 것의 핵심이며 진정한 본질이며 실존의 목적이다.

지성이란 그것을 갖고 있지 않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진실하고 현실적인 것은 현재뿐이다. 현재야말로 현실적으로 가장 충실한 시기이며 우리의 현재 생활은 순전히 현재 속에서 존재한다. 그러므로 언제나 명랑하게 현재를 받아들여야 한다. 따라서 직접적으로 불쾌와 고통이 따르지 않는 견딜만한 한 때가 주어진다면 그것 그대로 즐기는 것이 좋다. 지난날의 좌절이나 미래에 대한 근심 때문에 찡그리고 현재를 어둡게 해서는 안 된다. 염려와 후회에 어느 정도 시간을 쓰는 것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서는 아무리 마음 아프더라도 지나간 일로 해두자. 아무리 괴롭더라도 울렁거리는 가슴을 가라앉히자.

짐승을 대함에 있어 굳이 도덕적일 필요도 없을뿐더러 도덕적 책임감이 없다는 잘못된 믿음이 있다. 이야말로 상스럽고 몰지각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16. 몽테뉴 [Michel Eyquem de Montaigne, 1533.2.28 ~ 1592.9.13]

 

미셀 에켐 드 몽테뉴는 보르도 근처의 대저택에서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자랐다. 그는 모든 교육을 집에서 받았는데 여섯 살까지는 라틴어로 말하는 것만 허용되었다. 서기 1557년부터 13년간 몽테뉴는 지역의 고등법원에 몸담았으나 1571년 자리에서 물러나 가족의 재산을 상속했다. 1580년에 수상록 제1권을 간행했고 그때부터 1592년에 죽기 전까지 두 권을 더 썼다. 1585년까지는 보르도 시장에 선출되어 정계에 복귀해 공직생활을 하였다.

그의 철학에서는 우리가 타인의 눈에 비치는 영광을 좇고 싶은 욕망을 떨쳐내야 하며, 타인의 인정, 존경이 항상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몽테뉴에 의하면 우리는 주변 사람들의 평판에 너무 신경 쓰다가 타락하게 되고 이성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내가 농부들과 함께 있는 것을 더 좋아하는 이유는 농부들은 잘못 사고하도록 충분한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사 (종교적인 옷인) 헤어셔츠를 입었다 해도 그것이 육체의 순결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명성과 평온은 결코 친구가 될 수 없다.

 

17. 토머스 홉스 [Thomas Hobbes, 1588.4.5 ~ 1679.12.4]

 

어려서부터 부모를 여윈 토머스 홉스는 부유한 삼촌에게서 자라 훌륭한 교육을 받았다. 옥스퍼드 대학 학위를 받았고 데본셔 백작 아들의 가정교사 자리를 얻어 일하면서 유럽을 두루 여행할 기회를 잡았다. 그는 마랭 메르센, 피에르 가상디, 르네 데카르트, 이탈리아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 등 이름난 과학자와 사상가들을 만낫다. 그는 1640년 영국 내전을 피해 프랑스로 망명했고 그곳에서 11년을 보냈다. 1642시민론을 출간했고 그는 리바이어던에서 국가의 기능, 도덕,정치에 대한 견해 때문에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뛰어난 번역가, 수학자로써 명성을 날리다가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에 의하면 물질이 없으면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고 따라서 우주 만물은 물질적인데 인간도 완전히 물질적이며 그래서 인간은 기계라는 주장을 했으며 생명은 팔과 다리의 운동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명확한 개념설명의 부족으로 만물을 물질적 용어로 설명할 수 있다는 그의 이론은 과학론의 진술로 보기가 힘들어져있지만 인간 본성, 사회질서에 대한 통설 등에 의문을 제기한 혁신적인 철학자로 손꼽힌다.

 

욕구란 성취에 대한 생각이 함께 할 때 희망이라 불린다. 같은 욕구에 이러한 생각이 없다면 이는 절망이다.

 

감각, 사고, 사고의 흐름을 제외하면 인간의 정신에는 아무런 운동도 없다.

 

18. 르네 데카르트 [René Descartes, 1596.3.31 ~ 1650.2.11]

 

데카르트는 프랑스 투르 지방에서 태어나 라플레슈에서 예수회가 운영하는 콜레주루아얄에서 공부했다. 그는 건강이 좋지 못했고 늦잠을 자도 괜찮다는 허락을 받았는데 그런 습관 때문에 사색하는 버릇이 생겼다. 16살부터 수학 공부에 심취하였고 22살부터 4년간 학업을 중단하고 군대에 자원하여 유럽 30년 전쟁에 참전했다. 그때부터 데카르트는 철학이 자신의 천직임을 깨닫고 군대에서 제대한 후에 네덜란드에 정착하여 여생 대부분을 보내었다.

서기 1649년에는 크리스티나 여왕의 초대를 받아 스웨덴에서 철학을 가르쳤고 그때 평소 습관과는 달리 새벽에 일어나야 하는 것, 낯선 생활방식, 기후 때문에 폐렴에 걸리고 말았고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남긴 주요저서는 방법서설, 성찰, 철학의 원리, 인간론 등이 있다.

그는 악마 때문에 내가 거짓을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에서 출발하여 내가 확신할 수 있는 사실은 아무것도 없고 그러나 자신은 살아있고 존재한다 라고 했을 때 이것을 잘못 알고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또한 내가 실재하는 경우에만 악마가 나로 하여금 이를 믿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이로 인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철학이 탄생하게 되었다.

 

 

좋은 책을 읽는 것은 과거 몇 세기의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같다.

진정 진리를 추구하려면 최소한 인생에 한 번은 가능한 한 모든 것에 대해서 의심을 품어봐야 한다.

살아가는 동안 적어도 한 번은 가능한 한 모든 것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최고의 능력과 책략을 겸비한 심술궂은 악마가 온 힘을 다해 나를 속이려 든다고 가정하련다.

나는 있다, 존재한다.”라는 명제는 내가 언제 이야기하거나 마음속으로 떠올리든 간에 참일 수밖에 없다.

 

 

19. 발타사르 그라시안 (Baltasar Gracián y Morales, 1601 1.8 - 1658 12.6)

 

17세기 에스파냐의 작가. 타라고나의 예수회 부속학 교장을 역임하였다. 저서로 <비평가>가 유명하다. 프랑스 모랄리스트들의 선구가 되었다. 그는 18세기 취향 개념을 둘러싸고 유럽에서 벌어졌던 논쟁에서 아주 근본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데 그의 책은 수많은 변역을 통해서 국제적으로 널리 전파되었고 오늘날에도 연설전략, 영업 전술을 교육 하는데에 사용된다. 그의 글은 예리함, 재치, 유희 등으로 수사학적 세련됨이 빛을 발한다.

 

현명한 사람은 친구들 중 바보보다는 자신의 적들로부터 더 큰 쓸모를 얻는다.

쉬운 일을 어려운 일처럼, 어려운 일을 쉬운 일처럼 대하라. 전자는 신뢰가 잠들지 않게, 후자는 자신감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탁월한 능력은 새로운 과제를 만날 때마다 스스로 발전하고 드러낸다.

자신을 내보여라. 그러면 재능이 드러날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소유하는 것은 시간 뿐이다. 가진 것이 달리 아무 것도 없는 이에게도 시간은 있다.

 

 

20. 스피노자 [Baruch de Spinoza, 1632.11.24 ~ 1677.2.21]

 

바뤼흐 스피노자, 또는 베네딕투스 스피노자는 서기 1632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났다. 그는 암스테르담의 포르투갈 출신 유대인의 사회에서 파문당했다. 스피노자는 겸손했고 도덕적인 인물로 지적 자유를 위해서 유망한 교수직 자리를 거절했고 철학 개인 교수, 렌즈를 깎는 일로 평생 생애를 유지하다가 1677년 폐결핵으로 숨을 거두었다. 스피노자에 의하면 우주만물은 몸체와 정신을 갖추고 있는데 몸체와 정신은 실체의 속성이며 실체는 곧 신이며 그 신 안에서는 모든 것이 명백히 설명된다는 주장을 하였다. 스피노자의 이론은 범신론으로 이해되는데 세계는 신이지만 신은 세계 이상의 존재라고 본다. 다시 말해 세계 자체가 전적으로 실체, 신이라고 본다. 그의 저서로는 신학 정치론, 에티카 등이 있다.

 

가장 비참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대개 가장 야심차고 질투가 많다.

명성에는 이런 큰 단점도 있는 바, 바로 우리가 그것을 좇을 수록 다른 이들의 비위를 맞추는데 우리 인생을 경주해야한다는 것이다.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행동이 미덕의 첫 단계이자 유일한 기본이다.

이도 저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한, 그것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는 한 결과적으로 그것을 하기란 불가능해진다.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행동이 미덕의 첫 단계이자 유일한 기본이다.

나는 인간의 행동을 경멸하거나 탄식하거나 비웃지 않고 다만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모든 고귀한 일은 찾기 드문만큼 하기도 어렵다.

현재가 과거와 다르길 바란다면 과거를 공부하라.

우리는 영원불멸하다는 것을 느끼고 안다.

새로운 발상에 놀라지 마라, 다수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더 이상 진실이 아니지는 않다.

21. 존 로크 [John Locke: 1632-1704]

 

존 로크는 서기 1632년 영국 시골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나 부유한 후원자를 만나 웨스트민스터학교, 옥스퍼드대학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았다. 로크는 정치저작 덕분에 유명해졌는데 그는 정부의 정당성, 사유재산에 대한 자연권 개념을 다루는 사회계약론을 제시하였다. 정치 문제로 영국을 떠나 두 차례 정도 망명길에 올랐고 1688년 윌리엄 3, 메리 2세가 즉위한 뒤 영국으로 돌아왔다 1704년 세상을 떠났다. 주요 저서로는 관용에 관한 편지, 인간오성론, 정부론 등이 있다.

 

나는 행동이 사람의 생각을 가장 훌륭하게 해석해준다고 늘 생각해왔다.

정신이 아무런 글자도 아무런 관념도 쓰여 있지 않은 하얀 종이라고 가정해보자. 그것이 어떻게 채워지겠는가?

정신에 각인되었으나 정신이 인지하거나 이해받지 못하는 진리가 있다는 말은 모순으로 들린다.

갓난아이들은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그들이 여러 관념을 세상에 가져온다고 생각할 이유가 거의 없어질 것이다.

 

22. 볼테르 [Voltaire, 1694.11.21 ~ 1778.5.30]

 

볼테르는 프랑스의 작가, 사상가인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의 필명을 뜻한다. 그는 파리의 중산층 가정에서 세 자녀 중 막내로 태어났는데 법률을 전공했지만 글 쓰기를 더욱 좋아해 1715년 문학적 재치로 명성을 날렸지만 풍자적 작품 때문에 때로 곤경에 처하기도 했다. 한 번은 귀족 모욕죄로 투옥되기도 했고 프랑스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그 때문에 영국에 머무르면서 그는 영국 철학, 과학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법률 개정을 촉구했고 종교의 무자비성에 저항하는 운동을 펼치면서 인생을 보냈다. 주요 저서로는 철학 서간, 형이상학론, 캉 디드, 철학사전 등이 있다.

 

많은 책들이 우리를 무식하게 만들고 있다.

의심하는 것이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확신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23.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 Johann Gottlieb Fichte 1762. 5. 19 - 1814. 1. 27)

 

독일의 철학자, 독일 관념론의 대표 철학자이다. 실천적이고 주관적 관념론을 펼쳤고 그의 사상은 셸링, 헤겔로 계승되었다. 1792년 예나대학에서 교수가 되었고 1797년에 지식학에 대해서 중요한 논고를 발표하였다. 유명한 무신론 논쟁을 야기시켰고 예나대학에서 물러났는데 나폴레옹 전쟁 시에 프로이센이 위기에 처하자 독일국민에게 고함이라는 강연을 하였다. 그는 슐레겔 형제를 비롯해 낭만파 사람들과 교류하였고 사상은 신비적, 종교적 색채가 짙었는데 정치문제에도 활발한 발언을 시도하였다. 그의 철학은 이론이성, 실천이성중 실천이성에 중점을 두었고 통일적으로 파악하려고한 실천적, 주관적 관념론이었으며 근대적 자아를 자율적 형이상학적 원리에까지 지양하는 역할을 하였다.

 

나를 생각하라. 그리고 그러는 데 무엇이 수반하는지 지켜보라.

 

 

24. 헤겔 [Hegel, Georg Wilhelm Friedch 1770 ~ 1831]

 

서기 1770년에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태어난 게오르크 헤겔은 튀빙겐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했다. 그는 프리드리히 휠덜린, 프리드리히 셸링과 만나 친구가 되었다. 그 후 몇 년간 가정교사로 일하다가 유산을 상속하고서 예나대학의 셸링과 합류하였따. 그의 정신현상학이라는 대표작 때문에 독일 철학계에서 단숨에 우위를 차지했다. 자금이 필요했던 그는 신문 편집자에 이어 김나지움 교장직을 맡았다. 하이델 베르크대학, 베를린 대학에서 교수로 임용되었고 41살의 나이로 마리 폰 투어와 결혼하여 자식을 두었는데 콜레라가 유행했던 1831년 세상을 떠났다.

그의 중심사상은 의식에서 정치제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현상은 하나의 정신의 양태들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정신은 이런 현상을 자신의 양태로 인식하고 재통합한다. 현실은 모두 정신이며 정신은 모두 역사적 과정이라고 그는 설명하였다.

주요저서로는 정신현상학, 논리학, 엔치클로페디 등이 있다.

 

목표가 가치 있을 때 비로소 인생은 가치를 지니게 된다.

곤란이 크고 악질적일수록 이것에 대한 승리와 명예는 위대하다.

모순은 모든 운동과 생명의 뿌리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다가올 때 날개짓을 시작한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

무엇이 존재하는지 이해하는 것이 철학의 임무이다. 존재하는 것은 곧 정신이기 때문이다.

철학의 각 부분은 하나의 철학적 완전체, 그자체로 완전하고 완벽한 원이다.

세계사의 각 단계는 세계정신의 이데아에 꼭 필요한 시기이다.

절대정신에 관해 언급해두어야 할 것은 그것이 본질적으로 결과이며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야만 참된 절대정신이 된다는 점이다.

 

25. 애덤 스미스 [Adam Smith, 1723.6.5 ~ 1790.7.17]

 

근대 경제학의 아버지로 손꼽히는 애덤스미스는 1723년 스코틀랜드 파이프의 커콜디에서 태어났다. 그는 에든버러대학, 글래스고대학에서 강사로 일하다가 1750년 교수가 되었다. 1760년대에는 스코틀랜드 귀족 헨리 스콧의 개인교수가 되어 상당한 보수를 받으며 프랑스, 스위스를 여행하였다. 데이비드 흄을 비롯한 스코틀랜드 계몽주의 사상가들과 알고 지냈던 스미스는 유럽 계몽주의 지도자들을 만날 기회까지 잡았다. 스코틀랜드로 돌아온 후에는 10년간 국부론, 집필에 힘썼고 관세청장이 되어 경재정책에 대해 영국 정부에 조언하였다. 주요저서로는 도덕감정론, 국부론, 철학적 주제들에 관한 소론 등이 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행동은 이기심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인간은 서로에게 제공할 수 있는 재화, 용역 등이 필요하고 양측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방식으로 재화, 돈을 교환하는 데 동의해야 한다고 하였다.

 

인간은 흥정하는 동물이다.

노동자의 생산력이 엄청나게 향상된 것은 분업의 효과인 듯 하다.

문명 사회는 항상 여러 사람의 협력과 도움이 필요하다.

 

 

26. 임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 1724.4.22 ~ 1804.2.12]

 

이마누엘 칸트는 1724년 가난한 마구 생산업자의 가정에서 태어나 발트해 국제적 항구도시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평생 일했다. 그는 쾨니히스베르크대학에서 철학, 물리학, 수학을 공부하고 27년간 교편을 잡았다. 1792년 그의 이단적 견해를 못마땅히 여겼던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는 그의 강의 활동을 금지시켰고 국왕이 죽고난 뒤 5년 후부터 그는 교직으로 복귀하였다. 평생 저술활동에 전념했고 오십대, 육십대에 썼던 저작들은 철학사에서 없어서는 안될 저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명랑했고, 사교적이었으며 자기관리에 철두철미했던 그는 좋다라는 말을 남기며 80살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주요 저서는 순수이성비판, 도덕형이상학원론,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 등이 있다.

 

과학은 정리된 지식이다. 지혜는 정리된 인생이다.

선행이란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나는 해야 한다. 그러므로 할 수 있다.

인격이란 책임질 줄 아는 능력이다.

오락의 자리에서 즐겨 노는 것을 절제하라. 향락을 절제하면 그만큼 인생은 풍부해질 것이다.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 남자는 여인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둔하며, 졸렬하고 애교도 부리지 못한다.

 

사회는 곧 계약이다.

 

27. 에드먼드 버크 [Edmund Burke, 1729.1.12 ~ 1797.7.9]

 

영국계 아일랜드 정치가 에드먼드 버크는 더블린에서 태어나서 교육을 받았다. 젊은 시절부터 철학이 정치에 유용한 훈련이라고 확신했던 그는 1750년대에 사회의 기원, 미학을 다룬 논문을 여러 편 썼고 자유주의적 진영인 휘그당의 주요 당원으로 1766-1794년까지 영국 하원의원으로 활동하였다.

 

그 후 인도 총독 워런 헤이스팅스를 탄핵하는 일에 관여하기도 했는데 이후 죽는날까지 식민지시대의 부정행위를 비판했고 대영제국의 양심이라는 평판을 얻었다. 그는 원죄의 교리를 중요시했고 자기 행위의 책임을 사회에 돌리려는 사람을 동정하지 않았다. 그가 생각하기에 개인 판단의 불완전성은 도덕적 태도를 권장하는 전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는 사유재산제도를 옹호했고 자유시장을 낙관하였다. 그의 주요저서로는 자연적 사회의 옹호론, 현재의 불만에 관한 고찰, 프랑스 혁명에 관한 고찰 등이 있다.

 

28.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Mary Wollstonecraft, 1759 ~ 1797]

 

18세기 영국의 작가, 여권 신장론자이다. 여성 자신의 자각을 호소하는 여성의 권리옹호1792년에 출간하였고 기존사회 관념에 도전하여, 여성의 교육적 사회적 평등을 주장한 철학자이다. 그는 남녀는 뇌와 정신이 근본적으로 비슷하게 같은 교육을 받을 경우 똑같이 훌륭한 성품, 합리적 사고방식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녀의 철학 덕분에 19-20세기에 여성참정권운동, 페미니즘 운동이 활발히 일어났다.

 

여자도 권리를 공유하게 하면 남자 못지않게 훌륭해질 것이다.

 

29. 쇼펜하우어 [Arthur Schopenhauer, 1778.2.22 ~ 1860.9.21]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던 아르투르 쇼펜하우어는 아버지와 같은 상인이 되라는 기대를 받았지만 1793년 가족이 함부르크에 정착하기 전 프랑스, 영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아버지가 죽고 나자 장사 일을 그만두고 그는 대학에 가서 철학, 심리학을 공부했다. 그의 성과를 평생 비난했던 어머니로 인해 평생 여성혐오증을 가졌고 어머니와 껄끄러운 관계로 살았다.

한편 학업을 마친 그는 베를린 대학 강사가 되었고 몇 차례 연애에 빠졌지만 결혼은 하지 않아 바람둥이라는 평판도 얻었다. 어떤 여자를 폭행해 유죄를 선고받은 경험도 있다. 1831년 프랑크푸르트로 이주한 그는 아트만과 부츠라는 푸들을 차례로 키우면서 여생을 보냈다. 칸트의 형이상학을 출발점으로 삼았던 그는 자신만의 세계관을 발전시켰고 현상계, 본체계의 본질을 설명하고 싶어 하였다. 그의 철학에는 염세주의적인 색채가 짙은데 그에게 있어서 인간은 우주의 맹목적 의지에 휘둘린다고 생각하였다. 인간은 의지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며 비존재가 되거나 만족을 좇는 의지를 줄여야만 적어도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때문에 인생에서 심미적 관조, 음악 등으로 인생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는데 이런 그의 철학은 불교의 성격과도 비슷하다. 그의 주요저서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여록과 보유 등이 있다.

 

우리 지식과 학습의 기반은 설명할 수 없다.

허영심은 사람을 수다스럽게 하고, 자존심은 우리를 침묵하게 한다.

돈 빌려 달라는 것을 거절함으로써 친구를 잃는 일은 적지만, 돈을 빌려줌으로써 도리어 친구를 잃기는 쉽다.

돈이란 바닷물과도 같다. 그것은 마시면 마실수록 목이 말라진다.

들척지근한 형이상학적 철학은 믿지말라. 책을 넘길 때마다 눈물이 흐르는 소리, 고통의 신음소리, 그리고 서로에 대한 일반적인 살인이라는 끔찍한 비명 소리가 들리지 않는 철학은 철학이 아니다.

명예는 밖으로 나타난 양심이며, 양심은 내부에 깃든 명예이다.

보통 사람은 시간을 소비하는 것에 마음을 쓰고, 재능있는 사람은 시간을 활용하는 것에 신경을 쓴다. - 쇼펜하우어

 

사나이의 애정은 자신이 육체적 만족을 취한 순간부터 급격하게 떨어진다. 다른 여자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그가 소유한 여인보다 많은 매력을 가진 듯이 생각되어 그는 변화를 추구한다. 그것과는 반대로 여인의 애정은 이 순간부터 증대한다.

 

사람이 동물이 아니라면 동물이 사람이다. 서양에서 인간들은 더 이상 자신의 형제를 인정하지 않는다. 인간들은 터무니 없게도 동물이 자신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런 착각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인간들은 동물을 짐승이라고 부른다. 또한 그런 짐승에 관하여, 인간들과 공통되게 동물들이 지니고 있는 생식 기능에 욕에 버금가는 명칭을 붙여준다. 인간들은 동물들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존재라 주장하며, 동물과 인간이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주는 증거를 철저히 무시하며 살아간다.

 

사람이 우스꽝스럽게 보이거나 초라해 보인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사람의 인격을 존중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사람의 영혼이란 누구나 같기 때문이다.

세상의 본질은 짝을 지으려는 의지적 행위이다. 그것이 바로 모든 것의 핵심이며 진정한 본질이며 실존의 목적이다.

지성이란 그것을 갖고 있지 않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진실하고 현실적인 것은 현재뿐이다. 현재야말로 현실적으로 가장 충실한 시기이며 우리의 현재 생활은 순전히 현재 속에서 존재한다. 그러므로 언제나 명랑하게 현재를 받아들여야 한다. 따라서 직접적으로 불쾌와 고통이 따르지 않는 견딜만한 한 때가 주어진다면 그것 그대로 즐기는 것이 좋다. 지난날의 좌절이나 미래에 대한 근심 때문에 찡그리고 현재를 어둡게 해서는 안 된다. 염려와 후회에 어느 정도 시간을 쓰는 것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서는 아무리 마음 아프더라도 지나간 일로 해두자. 아무리 괴롭더라도 울렁거리는 가슴을 가라앉히자.

짐승을 대함에 있어 굳이 도덕적일 필요도 없을뿐더러 도덕적 책임감이 없다는 잘못된 믿음이 있다. 이야말로 상스럽고 몰지각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29. 쇼펜하우어 [Arthur Schopenhauer, 1778.2.22 ~ 1860.9.21]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던 아르투르 쇼펜하우어는 아버지와 같은 상인이 되라는 기대를 받았지만 1793년 가족이 함부르크에 정착하기 전 프랑스, 영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아버지가 죽고 나자 장사 일을 그만두고 그는 대학에 가서 철학, 심리학을 공부했다. 그의 성과를 평생 비난했던 어머니로 인해 평생 여성혐오증을 가졌고 어머니와 껄끄러운 관계로 살았다.

한편 학업을 마친 그는 베를린 대학 강사가 되었고 몇 차례 연애에 빠졌지만 결혼은 하지 않아 바람둥이라는 평판도 얻었다. 어떤 여자를 폭행해 유죄를 선고받은 경험도 있다. 1831년 프랑크푸르트로 이주한 그는 아트만과 부츠라는 푸들을 차례로 키우면서 여생을 보냈다. 칸트의 형이상학을 출발점으로 삼았던 그는 자신만의 세계관을 발전시켰고 현상계, 본체계의 본질을 설명하고 싶어 하였다. 그의 철학에는 염세주의적인 색채가 짙은데 그에게 있어서 인간은 우주의 맹목적 의지에 휘둘린다고 생각하였다. 인간은 의지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며 비존재가 되거나 만족을 좇는 의지를 줄여야만 적어도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때문에 인생에서 심미적 관조, 음악 등으로 인생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는데 이런 그의 철학은 불교의 성격과도 비슷하다. 그의 주요저서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여록과 보유 등이 있다.

 

우리 지식과 학습의 기반은 설명할 수 없다.

허영심은 사람을 수다스럽게 하고, 자존심은 우리를 침묵하게 한다.

돈 빌려 달라는 것을 거절함으로써 친구를 잃는 일은 적지만, 돈을 빌려줌으로써 도리어 친구를 잃기는 쉽다.

돈이란 바닷물과도 같다. 그것은 마시면 마실수록 목이 말라진다.

들척지근한 형이상학적 철학은 믿지말라. 책을 넘길 때마다 눈물이 흐르는 소리, 고통의 신음소리, 그리고 서로에 대한 일반적인 살인이라는 끔찍한 비명 소리가 들리지 않는 철학은 철학이 아니다.

명예는 밖으로 나타난 양심이며, 양심은 내부에 깃든 명예이다.

보통 사람은 시간을 소비하는 것에 마음을 쓰고, 재능있는 사람은 시간을 활용하는 것에 신경을 쓴다. - 쇼펜하우어

 

사나이의 애정은 자신이 육체적 만족을 취한 순간부터 급격하게 떨어진다. 다른 여자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그가 소유한 여인보다 많은 매력을 가진 듯이 생각되어 그는 변화를 추구한다. 그것과는 반대로 여인의 애정은 이 순간부터 증대한다.

 

사람이 동물이 아니라면 동물이 사람이다. 서양에서 인간들은 더 이상 자신의 형제를 인정하지 않는다. 인간들은 터무니 없게도 동물이 자신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런 착각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인간들은 동물을 짐승이라고 부른다. 또한 그런 짐승에 관하여, 인간들과 공통되게 동물들이 지니고 있는 생식 기능에 욕에 버금가는 명칭을 붙여준다. 인간들은 동물들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존재라 주장하며, 동물과 인간이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주는 증거를 철저히 무시하며 살아간다.

 

사람이 우스꽝스럽게 보이거나 초라해 보인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사람의 인격을 존중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사람의 영혼이란 누구나 같기 때문이다.

세상의 본질은 짝을 지으려는 의지적 행위이다. 그것이 바로 모든 것의 핵심이며 진정한 본질이며 실존의 목적이다.

지성이란 그것을 갖고 있지 않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진실하고 현실적인 것은 현재뿐이다. 현재야말로 현실적으로 가장 충실한 시기이며 우리의 현재 생활은 순전히 현재 속에서 존재한다. 그러므로 언제나 명랑하게 현재를 받아들여야 한다. 따라서 직접적으로 불쾌와 고통이 따르지 않는 견딜만한 한 때가 주어진다면 그것 그대로 즐기는 것이 좋다. 지난날의 좌절이나 미래에 대한 근심 때문에 찡그리고 현재를 어둡게 해서는 안 된다. 염려와 후회에 어느 정도 시간을 쓰는 것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서는 아무리 마음 아프더라도 지나간 일로 해두자. 아무리 괴롭더라도 울렁거리는 가슴을 가라앉히자.

짐승을 대함에 있어 굳이 도덕적일 필요도 없을뿐더러 도덕적 책임감이 없다는 잘못된 믿음이 있다. 이야말로 상스럽고 몰지각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30. 존 스튜어트 밀 [John Stuart Mill, 1806.5.20 ~ 1873.5.7]

 

존 스튜어트 밀은 서기 1806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철학자, 역사가 제임스 밀은 제러미 벤담과 함께 철학적 급진주의운동을 시작하였다. 존은 가정에서 아버지에게 교육을 받았는데, 그 만만치 않은 교육과정은 겨우 세 살 난 밀에게 그리스어를 가르치는 일이었다. 다년간 공부에 매진했던 그는 20살 신경쇠약을 겪었고 1857년까지 동인도회사에 몸을 담았다. 그 일로 생계를 하면서도 저술활동을 할 수 있었는데 그러던 중 여성인권옹호인 해리엇 테일러와 20년간 교제한 끝에 결혼했다. 1865년부터 1868년까지는 하원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윤리학과 정치철학 등을 실천에 옮기는 일을 했다. 주요저서로는 논리학 체계, 정치경제학원리, 자유론, 공리주의, 여성의 예속, 자유론 등이 있다.

 

인간은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다스리는 왕이다.

만족한 바보보다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되는 편이 낫다.

신념이 있는 한 사람은 관심만 있는 아흔아홉 사람과 맞먹는 사회적 힘이다.

 

31. 헨리 데이비드 소로 [Henry David Thoreau, 1817.07.12 ~ 1862.05.06]

 

1817년에 출생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불 순응주의의 정치 철학자였다. 그는 루소가 자연 상태에서 본래 선하다고 주장한지 한 세기가 지난 뒤 훌륭한 것은 모두 자유로운 야생 상태라고 주장하며 인간의 법이 인간을 억압한다고 주장하였다. 1849년에는 수필 시민불복종에서 비협조, 비폭력 저항을 수반하는 양심적 거부권이 시민에게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후에 간디, 마틴 루터 킹 등 수많은 혁명운동 지도자들에게 받아들여졌다.

 

시민은 늘 양심을 버리고 입법자를 따라야 하는가?

 

32. 찰스 샌더스 퍼스 [Peirce, Charles Sanders, 1839 - 1914]

 

찰스 샌더스 퍼스는 과학자, 논리학자, 과학철학자로 실용주의라는 철학운동을 했다. 그는 과학, 철학, 신학의 여러 논쟁이 무의미함을 증명하기 위해 평생을 애썼는데 말에 관한 논쟁은 감각에 미치는 영향을 전혀 상술할 수 없기 때문에 불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 무엇도 과학에 필수적이지 않을뿐더러 그렇게 될 수도 없다.

 

33.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0.15 ~ 1900.8.25]

 

프리드리히 니체는 서기 1844년 프로이센의 종교적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삼촌, 할아버지가 모두 루터교의 목사였는데 아버지, 남동생은 니체 어릴 적 사망했다. 그는 어머니, 할머니, 숙모들에게서 키워졌는데 24세 바젤대학의 교수가 되었고 그곳에서 작곡가 바그너를 만났다. 바그너는 반유대주의로 니체와 결별하게 되었지만 니체에게 큰 영향을 미친 작곡가였다.

한편 1879년 전염병인 디프테리아와 이질에 걸린 니체는 계속해서 병마에 시달렸고 1879년 교수에서 해임되고 난 뒤 10년 동안 유럽을 여행했는데 1889년에는 말이 채찍질 당하지 않게 막으려다가 길에 쓰러졌고 그 이후 일생을 정신분열증상을 일으키다가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1900년 사망했다. 주요저서로는 비극의 탄생,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선악의 피안, 우상의 황혼 등이 있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과정에서 자신마저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그대가 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 볼 때 심연 역시 그대를 들여다 본다.

하지만 그러므로 충고하건데 친구들이여, 남을 벌하려는 충동이 강한 자들 모두를 경계하라!

사랑에는 늘 어느 정도 광기가 있다. 그러나 광기에도 늘 어느 정도 이성이 있다.

예수는 너무 일찍 죽었다. 만일 그가 내 나이만큼 살았다면 자신의 교리를 부인했을 것이다.

젊은이를 타락으로 이끄는 확실한 방법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 대신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이를 존경하도록 지시하는 것이다.

 

남들이 우리와 다르게 살아가고 행동하며 경험한다는 사실을 알고 이에 기뻐하는 것이 사랑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성숙이란 어릴 때 놀이에 열중하던 진지함을 다시 발견하는 데 있다.

음악이 없다면 인생은 잘못된 것이다.

제자가 계속 제자로만 남는다면 스승에 대한 고약한 보답이다.

날으는 법을 가르칠 수 없는 자에게는 더 빨리 추락하는 법을 가르쳐라

강한 신념이야말로 거짓보다 더 위험한 진리의 적이다.

누구나 다 읽기를 배우게 하면 결국 글쓰기 뿐 아니라 생각도 망쳐버릴 것이다.

스스로를 경멸하는 사람은 경멸하는 자신을 존중한다.

춤추는 별을 잉태하려면 반드시 스스로의 내면에 혼돈을 지녀야 한다.

 

희망은 모든 악 중에서도 가장 나쁜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고통을 연장시키기 때문이다.

개선이란 무언가가 좋지 않다고 느낄 수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다.

 

지식인이라면 적을 사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친구를 미워할 수도 있어야 한다.

옛 사람들이 '신을 위해서' 행했던 것을 요즘 사람들은 돈을 위해서 행한다.

곧은 것은 한결같이 속인다. 진리는 하나 같이 굽어 있으며, 시간 자체도 둥근 고리다.

하지만 그러므로 충고하건데 친구들이여, 남을 벌하려는 충동이 강한 자들 모두를 경계하라!

나를 믿어라. 인생에서 최대의 성과와 기쁨을 수확하는 비결은 위험한 삶을 사는 데 있다. 자신의 벗을 최선의 적으로 삼아야 한다. 그대의 벗과 적대할 때 그대의 마음은 벗을 더없이 가깝게 여겨야 한다.

 

이 세상에 웃음이 있는 한 넌센스를 즐길 것이다. 우리는 행복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넌센스로 부터 얻는 즐거움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너무 많이 체험하고 너무 적게 숙고한다. 그들은 강렬한 식욕과 격심한 복통을 동시에 갖고 있으며, 그 때문에 아무리 많이 먹어도 갈수록 수척해진다. 누가 지금 나는 아무것도 체험하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그는 바보이다.

 

34. 앙리 베르그송 [Henri Bergson, 1859.10.18 ~ 1941.1.4]

 

앙리 베르그송은 당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프랑스 철학자였다. 그는 서기 1859년 프랑스에서 영국인 어머니, 폴란드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처음에는 수학에 지적 호기심을 느꼈지만 결국 철학자가 되었다.

 

1896, 물질과 기억을 출간한 이후 콜레주 드 프랑스의 강사가 되었다. 정치에서도 성공적인 경력을 쌓아서 1913년 국제 연맹이 창설되었던 때 프랑스 정부를 대표하기도 하였다. 베르그송의 저서는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윌리엄 제임스를 비롯한 많은 철학자, 심리학자에게 영향을 주었다. 192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194181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주요저서로는 물질과 기억, 형이상학 입문, 창조적 진화,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 등이 있다.

 

그는 그의 저서에서 무엇인가를 정말로 안다는 것, 그 대상에 관해 알 뿐만 아니라 대상 자체를 안다는 일은 과연 가능한 것인가를 발견해내려고 했다. 또 그에 따르면 직관이란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우리의 개념을 통해서 세계를 파악하는 것이며 자신만의 내적인 시간, 우리가 돌아다니는 도시의 시간이 겹쳐질 때 사물의 본질에 이른다는 주장을 하였다.

 

직관은 생의 방향으로 흐른다.

 

 

35. 에드문트 후설 [Edmund Husserl, 1859 4.8 - 1938 4.27]

 

에드문트 후설은 서기 1859년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이었던 모라비아에서 출생하였다. 처음에는 수학과 천문학을 공부했지만 수학 박사과정을 마친 뒤 철학에 입문하기로 마음먹었다. 1887년 후설은 말비네 슈타인슈나이더와 결혼해서 세 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 후 할레대학에서 객원강사로 1901년까지, 괴팅겐대학에 부교수로 취임했다 1916년에는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교수로 마르틴 하이데거를 제자로 두었다. 1933년 후설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대학에서 해고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하이데거가 연관이 있었다. 1938년에는 사망할 때까지 집필활동을 계속하였다.

 

그는 철학자들 중에 확실성이라는 목표를 추구했던 학자로 정의란 무엇이며 미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이 합의에 도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데카르트와 유사한 방법으로 철학을 했지만 적용방법은 달랐다. 그에 따르면 기존의 모든 선입관을 배제한 채 과학적인 태도를 가진다면 완전히 새로운 상태에서 철학을 시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경험 그 자체로는 과학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인간과 공동체에 대한 합리적인 과학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36. 지그문트 프로이드 [Sigmund Freud, 1856.5.6 ~ 1939.9.23]

 

오스트리아의 신경학자, 정신의학자로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이다. 20세기 이후 지금까지 학자, 사상가로서 심리학, 정신의학, 철학, 인류학, 교육학, 범죄학, 사회학 및 문화계 각 분야에 이르기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체코의 프라이 베르트 지역에서 출생했고 빈 대학 의학부를 졸업 한 뒤에 1885년 파리에서 샤르코의 지도 하에 히스테리 환자를 관찰하며 연구했고 최면술, 카타르시스 및 자유연상법 등에 관한 연구과정을 거치며 정신분석 이론을 체계화 시켰다. 저서로는 꿈의 해석, 정신분석입문 외 많은 저술이 있다.

 

가는 곳마다 나보다 한 발 먼저 다녀간 시인이 있음을 발견한다.

히스테리 환자의 대부분은 추억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

가족들의 더할 나위없는 귀염둥이였던 사람은 성공자의 기분을 일생동안 가지고 살며, 그 성공에 대한 자신감은 그를 자주 성공으로 이끈다.

모든 것은 성적이다.

욕망과 성의 충동이 인간 행동의 두 가지 동기이다.

 

 

37. 러셀 (Bertrand Russell | 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 1872.5.18 - 1970.2. 2 )

 

버트런드 러셀은 1872년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수학에 관심이 있어서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는데 그곳에서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를 만나 수학 원리라는 저서를 함께 내었고 당대를 대표하는 철학자로 알려졌다. 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에게 깊은 영향을 주기도 한 사람이다.

 

그는 철학이 일반인과도 소통할 수 있기를 평생 바랬고 사회 활동가, 반전 주의자,교육자, 무신론 신봉자, 핵무기 반대 운동가로써 평생을 균형 잡힌 삶을 살았다. 그는 노동시간을 줄이면 더 많은 자유를 얻어 창조적인 관심사를 추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강한 자존감은 당신이 전쟁에서 포로가 되었을 때 당신을 비굴해지지 않도록 해 줄 것이고, 당신이 세상에 맞서 싸울 때 당신의 행동에 대해서 옳은 확신을 가져다 줄 것이다.

 

고민은 어떤 일을 시작하였기 때문에 생기기보다는 일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데서 더 많이 생긴다. 성공하고 못하고는 하늘에 맡겨두는 것이 좋다. 모든 일은 망설이기보다는 불완전한 채로 시작하는 것이 한 걸음 앞서는 것이 된다. 재능 있는 사람이 이따금 무능하게 되는 것은 성격이 우유부단하기 때문이다. 망설이기보다는 아예 실패를 선택하라.

 

공포는 미신 때문에 생기며, 잔인성을 유발하기도 한다.

참을성이 적은 사람은 그만큼 인생에 있어서 약하다. 한 줄기의 샘이 굳은 땅을 헤치고 솟아 나오듯 참고 견디는 힘이 마침내 광명을 얻게 한다. 하나의 어려운 일을 참고 극복하면, 강한 힘의 소유자가 된다. 고난과 장애물은 언제나 새로운 힘의 근원이다. 그러므로 고난과 장애물 앞에서 결코 낙심하지 말자. 오히려 그것을 딛고 일어서서 더 멀리 바라보자. 그것을 발판으로 하여 더 멀리 뛰자.

 

 

하는 일의 보수가 많고 적은 것을 너무 가리지 말아라. 현재 보수가 적고 대우는 빈약하더라도, 그 일을 통하여 출세의 문이 열리는 수가 많다. 그러므로 보수의 다소가 곧 출세를 좌우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수입이 많고 확고한 자리에 오른다는 것도 하나의 성공이긴 하지만, 하루아침에 그런 자리가 오지는 않는다. 처음에 박한 대우를 참고 견디는 동안 한 달 두 달 서서히 그 자리에 가까이 가게 되는 것이다.

 

한 사람이나 집단이나 군중이든 큰 공포감에 떨고 있는 대상에게 인도적인 행동과 분별 있는 생각을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행복의 비밀은 자신의 관심을 되도록 널리 지니고, 흥미를 끄는 사항이나 인물에 대해서 되도록 호의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행복이란 같은 취미와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교제로써 축적된다. 인간적 행복을 원하는 사람은 칭찬을 더 많이 하고 시기심을 줄여야 한다.

 

행복이란 불만에 자기가 속지 않으면 된다.

 

행복 하려는 것은 권리지만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한 알고 싶은 것을 배우고, 자신에게 최고의 기쁨을 가져다 줄 재능과 능력은 연마해야 함이 분명히 요구된다.

 

행복한 생활이란 대체로 고요한 생활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고요하다는 그 분위기 속에서만이 참다운 환희가 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성은 여성보다 몸집이 우람하다는 것 이외에는 여성보다 선천적으로 뛰어난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나는 단언한다.

 

모두 자신의 행복을 바라고 있다. 그렇지만 기술적으로 하나가 된 오늘날의 세계에서는 자신의 행복을 바라더라도 남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과 하나가 되지 않는 한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사랑은 성욕을 초월한 것이다. 그것은 인생의 절반에서 많은 남녀가 괴롭고 외로운 고독의 늪에서 도피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다.

 

사랑은 지구 깊은 곳까지 뿌리를 박고 하늘 높은 곳까지 가지를 뻗는 나무가 되어야 한다.

 

38. 카를 야스퍼스 [ Karl Jaspers | Karl Theodor Jaspers 1883 - 1969]

 

카를 야스퍼스에게 있어서 철학은 세상의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연구 분야였다. 그는 인간은 오로지 개인으로서만 철학을 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진리를 말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힘으로 진리를 찾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타인들에게 진리를 제시할 수는 없더라도 철학을 하는 과정은 집단 노력, 사색중인 동료들과의 공동체 속에서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었다.

 

오직 개인으로서만 인간은 철학자가 될 수 있다.

 

39.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 José Ortega y Gasset, 1883 ~ 1955]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1883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태어났다. 그는 마드리드대학에서 철학 공부를 시작한 다음 독일 대학에서 공부하며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의 영향을 받았고 대학 교수로 취임하며 스페인에 정착하였다. 그는 철학자, 언론인, 평론가였고 1920년대와 30년대에는 정치활동을 활발히 하였지만 1936년 스페인 내전이 터지면서 모든 활동을 중단하였다. 그 뒤 아르헨티나로 망명하여 1945년까지 그곳에서 머물렀는데 1948년에는 인문학연구소를 설립하였다. 그의 주요저서로는 돈키호테에 관한 성찰, 예술의 비인간화, 대중의 반역, 시스템으로서의 역사, 철학이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오르테가에 따르면 세상을 변화시키고 창조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자신부터 삶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신념, 편견 등을 재검토할 때 새로운 가능성을 창조할 수 있는데 우리의 습관적인 생각들이 워낙 뿌리깊이 자리 잡고 있기에 그것이 야말로 상상할 수 있는 미래로 다가가는데 걸림돌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다수결의 원칙에 따르는 삶, 남들처럼 사는 삶은 결국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나 자신이자 내가 처한 상황이다.

삶이란 미래와의 충돌의 연속이다.

 

40. 다나베 하지메 [田辺元, 1885 ~ 1962]

 

다나베 하지메는 1885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서 교토대학의 철학과 부교수로 취임, 교토학파의 일원이 되었다. 1920년대에 후설, 하이데거등과 함께 독일에서 공부했고 일본으로 돌아와 정교수가 되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강렬한 영향을 받아 1945년 교수직을 사퇴하였다. 은퇴 후에는 여생을 명상, 저술활동에 전념하였다. 주요저서는 초 인식론으로서의 철학이 있다. 그에 따르면 끊임없는 참회는 우리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다보면 궁극적으로 이르게 되는 최종 결론이라고 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참회란 우리가 절대무지를 깨닫고 궁극적 자각, 지혜에 이르는 길이다.

 

철학을 하려면 먼저 참회해야 한다.

철학에 속하는 문제라면 반드시 인식할 수 없는 부분이 내제할 것이다.

41.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9.26 - 1976.5.26]

 

마르틴 하이데거는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철학자 중 한명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서기 1889년 독일 메스키르히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사제가 되고자 마음먹었지만 우연히 에드문트 후설의 책을 읽고 나서 철학 공부를 하게 되었다. 하이데거는 곧 감화력 있는 교수로 명성을 떨치면서 메스키르히의 마법사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1930년대에는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총장이 되었고 나치당에 가입했다. 얼마나 나치 정권에 가담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는 인생의 마지막 30년 동안을 여행과 글로 보냈고 한나 아렌트, 베르너 하이젠 베르크등의 친구들과 교류하며 지내다가 1976년 프라이부르크에서 8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는 본래적 실존과 비 본래적 실존을 구분했고 그의 말에 따르면 죽음이 우리 가능성의 궁극적 한계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비로소 존재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에 도달한다고 하였다.

 

인간은 그 존재 자체가 하나의 사건으로 개별 존재는 보편 존재의 우위에 있어야 한다.

언어는 존재의 집

생의 근본적 기분은 불안이다.

죽음은 사건이 아니다. 실존적으로 이해해야 할 현상이다.

우리는 존재의 의미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질문해야 한다.

 

42. 막스 셸러 [Max Scheler, 1874.8.22 ~ 1928.5.19]

 

독일 철학자인 막스 셸러는 현상학자이다. 그는 현상학이 지나치게 지적 능력에만 초점을 맞추었기에 사랑, 심리적 경험과 같은 근본적인 부분을 놓쳤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프랑스 철학자였던 블레즈 파스칼의 영향을 받아 인간의 마음에는 특수한 논리가 있고 지적 능력의 논리와는 다르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에 따르면 사랑이야말로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철학이란 가능한 모든 본질적으로 실재에 관여하려는, 사랑으로 결정되는 움직임이다.

사랑은 빈곤한 지식에서 풍부한 지식으로 가는 징검다리이다.

 

 

43. 사르트르 [1905 - 1980]

 

파리에서 태어난 장 폴 사르트르는 생후 15개월 때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어머니, 할아버지 손에 자란 그는 천부적으로 뛰어난 천재성을 지니고 있었고 명망 높은 파리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해서 평생의 동반자였던 시몬 드 보부아를 만났다. 졸업 후에는 교사로 일하다 1931년 르아브르대학의 철학 교수로 임명되었다. 2차 세계대전 중 군대로 소집되었고 수감 생활도 했다. 1941년 석방되자마자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가하였다.

 

1945년부터 사르트르의 글은 정치적 색채가 강해지게 되었고 문학, 철학 평론지인 현대지를 창간하였다. 196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지정되었지만 수상을 거부하였다. 사르트르의 영향력과 인기, 그리고 시몬 드 보부아르와의 사랑은 후세에도 널리 알려져 여전히 유명세를 타고 있다. 그의 주요 저서로는 구토, 존재와 무, 실존주의와 휴머니즘, 변증법적 이성비판이 있다.

 

고독이라는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형태를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 하는 과제를 포함하고 있다. 고독에는 불안이 따른다.

 

생각, 이것보다 더 맛없는 것은 없다. 육체보다 더욱 맛이 없는 것이다. 생각은 더 이상 늘려질 수 없을 만큼 늘려진다. 그리고 이상한 맛을 남겨 놓는다.

 

어린 아이는 어른들이 만들어 놓고 후회하는 괴물이다.

 

절대적인 진리는 쉽게 붙잡을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있다. 그것은 타인의 손에 의해서 붙드는 것이 아니고 자기 스스로 붙드는 것이다.

 

인생은 B(Birth)D(Death) 사이의 C(Choice)이다.

타인이 곧 지옥이다.

인간에 관한 한, 내가 관심 있는 것은 그들의 현재가 아니라 그들의 미래이다.

인간은 우선 존재하고 세상에 등장한 후에야 자신을 정의한다.

우리의 존재는 본질에 선행한다.

 

44. 시몬 드 보부아르 [Simone de Beauvoir 1908-1986]

 

실존주의 철학자인 시몬 드 보부아르는 1908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소르본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장 폴 사르트르를 만나 평생을 친분을 유지하며 살았다. 그는 초대받은 여자, 레 망 다랭과 같은 소설작품에서 철학적 주제를 탐구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저작 2의성에서 페미니즘사상과 실존주의적 접근법을 접목시켰는데 정치적 좌파, 우파에서 모두 비난을 받아서 바티칸의 금서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그녀는 다작 작가였고 사르트르와 계약결혼이라는 독특한 사랑방식으로 인해서 지금도 혁신적인 여성 철학가로 손꼽힌다. 78세에 사망하였고 몽파르나스 묘지에 묻혔다. 주요저서로는 피뤼스와 키네아, 모호성의 윤리, 2의성 등이 있다.

 

호기심이 사라지는 순간 노년이 시작된다.

주어진 현실 세계를 자유가 지배하도록 하는 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임무다. 이 숭고한 진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남녀가 분명한 우애를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남성은 인간으로 규정되고 여성은 여자로 규정된다.

세계의 재현은 남성의 일이었다. 남성은 세계를 자신들만의 관점에서 그려내었다.

 

45. 메를로퐁티 [Maurice Merleau Ponty 1908 - 1961]

 

모리스 메를로퐁티는 1908년 프랑스 로슈포르쉬르메르에서 태어났다. 그는 장 폴 사르트르, 시몬 드 보부아르와 함께 파리고등사범학교에 다녔고 1930년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2차 세계대전 중 보병대에서 근무했으며 1945년 주요 저서인 지각의 현상학을 출간하였고 리옹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그는 관심분야가 매우 다양했는데 교육학, 아동심리학 등까지 광범위하였고 문학 및 철학 평론지 현대지의 고정 필자이기도 했다. 1952년 메를로퐁티는 콜레주 드 프랑스의 최연소 철학과 학과장이되었고 1961년 세상을 떠났다. 주요 저서로는 행동의 구조, 지각의 현상학,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 등이 있다. 그에 의하면 세계가 정신과 물질이라는 두 가지 별개의 실체로 구성되어있다는 기존의 이원론적 세계관을 거부하였고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았다. 정신과 육체는 그에 따르면 분리된 실체가 아니었고 생각과 인식이 몸으로 구체화되고, 세계, 의식, 육체는 모두 하나의 체계를 구성하는 일부분이라고 주장하였다.

 

몸이라는 것은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원래 공동의 속성을 가진 감정적이고 표현적인 것으로 상호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

 

우리는 원초적으로 자연적 세계와 관계해 있으며, 따라서 그 안에서 거주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타인들, 그리고 인간세계와의 전반성적인 유대를 향유하고 있다. 우리는 이상생활을 통해 우리의 세계의 형세를 결정하고 우리의 공통된 역사의 행로를 결정짓는 데 참여하고 있다. 우리의 참여는 결코 완전히 자립적일 수는 없으며, 그 까닭은 우리의 자유가 항상 타인들과의 자유와 얽혀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세계내 존재의 육체성과 근본적인 모호성은 결코 반성에 대한, 혹은 타인들과의 의사소통에 대한 장애물이 아니다.

 

인간은 세계 속에서만 존재하고, 오직 세계 속에서만 자기 자신을 안다.

세계를 발견하려면, 기존의 익숙한 수용방식과 단절해야 한다.

 

 

46. 윌리엄 제임스 [William James, 1842.1.11 ~ 1910.8.26]

 

찰스 샌더스 퍼스의 실용주의를 옹호하고 발전시키는 일을 맡았던 철학자이다. 퍼스 실용주의는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관찰뿐만 아니라 행동도 필요한데 어떤 생각들은 그것이 얼마나 유용하며, 우리에게 필요한 역할을 그것이 수행 하는가 못하는가에 달려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생각이든지 우리가 취하는 행동 덕분에 진리로 판명난다는 것이다.

 

그는 뉴욕에서 부유하고 지적인 가정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에는 그림을 공부했지만 19살 때 꿈을 접은 뒤 과학 공부를 시작했다. 우울증 때문에 의사 일을 하지 못했지만 1872년 학교를 졸업 한 뒤 하버드 대학에서 생리학 강사가 되었다. 그러면서 심리학, 철학에 관심이 점점 커져 그 분야의 책을 여러 권 출판하였고 1880년 하버드 대학에서 철학 교수직을 받고 1907년 퇴직했다. 주요 저서는 심리학의 원리, 믿으려는 의지,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 실용주의 등이 있다.

 

 

자기 행동이 변화를 가져오리라 믿고 행동하라. 정말 그렇다.

뭔가를 분류하는 방법은 모두 그것을 특정 목적에 따라 다루는 방법과 다름이 없다.

 

47. 존 듀이 [John Dewey, 1859 10.20 - 1952 6 1]

 

존 듀이는 1859년 미국 버몬트 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3년간 버몬트 대학 교사로 3년간 근무하다가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 심리학, 철학을 전공했다. 평생 동안 강의를 했고 교육, 심리학, 예술, 민주주의 다양한 분야에 폭넓은 길을 썼다. 또 시카코대학실험학교라는 교육기관을 설립하여 실천을 통해 배운다는 자신의 교육철학을 실행하였다. 195292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철학, 사회적 문제에 대한 저술활동을 끊임없이 이어나갔다. 주요저서로는 사고의 방법, 경험과 자연, 확실성의 탐구, 경험으로의 예술 등이 있다.

 

 

우리는 문제에 직면해야 비로소 생각한다.

우리는 철학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대신 극복한다.

교육은 그저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생산적인 과정이다.

 

48. 윌리엄 듀보이스 [William Edward Burghardt Du Bois, 1868.2.23 ~ 1963.8.27]

 

윌리엄 듀보이스는 일찍부터 학문적으로 두각을 나타낸 학자였다. 그는 베를린 대학에서 2년간 공부했고 하버드대학에 진학해 노예무역에 대한 학위논문을 썼고 하버드대학에서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은 흑인이었다.

 

대학 강사, 작가 등으로 활발히 활동하면서도 시민권운동, 급진주의정치에 참여하였다. 그는 소련의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이 사망했을 때 스탈린을 찬양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마틴루터킹을 높이 평가한 것도 있어 인종차별 철폐운동의 핵심인물로 남아 있다. 주요 저서는 흑인의 영혼, 니그로, 흑인의 선물, 새벽의 어스름: 인종 개념의 자서전에 관한 소론 등이 있다. 그는 일생동안 사회적 불평등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데 열정을 다했다. 그는 사회적 불평등이야말로 범죄의 주원인이라고 생각했다.

 

삶을 믿으라.

20세기의 문제란 곧 인종차별의 문제이다.

 

49. 버트란드 러셀 [ Bertrand Russell | 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 - 1872. 5.18 - 1970, 2.2]

 

버트런드 러셀은 1872년에 웨일즈의 귀족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수학에 관심이 있어 케임브리지대학에서도 수학을 전공하였다. 거기서 철학자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를 만나 수학원리라는 저서를 함께 썼다. 그는 평생 철학이 일반인과도 소통할 수 있기를 바라고 그러기 위해 힘썼다. 그는 사회 활동가, 반전주의자, 교육자, 무신론 신봉자, 핵무기 반대 운동가였다. 1970년 독감으로 사망했다. 주요저서로는 수학의 원리, 외부세계에 대한 우리의 지식, 물질분석, 논리와 지식 등이 있다.

 

적게 일할수록 인류의 행복은 늘어난다. 행복에 이르는 길은 조직적으로 일을 줄여가는 데에 있다.

일이 그 자체로 미덕이라는 생각이 엄청난 폐해를 야기했다.

일의 도덕성이란 곧 노예의 도덕성이다. 현대 사회에는 더 이상 노예제도가 필요 없다.

 

 

50. 루돌프 카르나프 카르나프 [Rudolf Carnap, 1891.5.18 ~ 1970.9.14]

 

루돌프 카르나프 카르나프는 독일 태생의 철학자로 그에 따르면 철학의 진짜 과제는 언어를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과학에 대해 명확하고 정확하게 말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언어는 자칫하면 실제 존재하지 않는 문제들을 찾아서 헤매도록 우리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고 경고하였다.

 

논리는 철학의 마지막 남은 과학적 요소이다.

논리에는 도덕이 없다.

51. 발터 베냐민 [Walter Benjamin. 1892 7.15 - 1940.9.27]

 

발터 벤야민은 대중문화, 커뮤니케이션의 의미를 연구하였던 신 마르크스주의 이론가 집단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일원이었다. 그는 거창한 이론을 거부했고 우연히 길을 걷다가 어떠한 것에 영감을 받듯이 자신의 철학 저서 속에서도 독자들이 그러한 방식으로 철학을 느끼길 바랐다. 그의 에세이 일방통행로는 문학적 구성을 도입하여 그가 마치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길을 걸어가면서 떠오르는 지적인 생각, 관찰 등을 모아 놓았다.

 

누군가를 아무 희망 없이 사랑하는 사람만이 그 사람을 제대로 안다.

현재의 삶을 구성하는 힘은 확신보다 사실에 훨씬 더 가까이 있다.

 

52. 허버트 마르쿠제 [Herbert Marcuse 1898.7.19 - 1979. 7.29]

 

마르쿠제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많은 일들의 비이성적 속성을 우리에게 깨우쳐주려고 노력했다. 그는 자본주의에 있어서 자유와 억압, 생산성, 파괴력, 성장과 퇴보 등의 조화를 매우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그에 따르면 이성의 체제 전복적인 측면을 잘 활용하면 철학적 문제제기를 잘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존재하는 것은 사실일 수 없다.

 

53. 한스게오르크 가다머 [Hans-Georg Gadamer, 1900.2.11 ~ 2002.3.14]

 

한스게오르크 가다머는 1900년 마르부르크에서 태어났고 독일 브레슬라우에서 자랐다. 그는 마르부르크대학에서 그의 연구에 영향을 끼쳤던 하이데거의 지도 아래 박사논문을 썼다. 마르부르크대학에서 부교수가 되어 학자로서 경력을 시작했고 1949년에는 야스퍼스의 뒤를 이어 하이델베르크대학의 철학교수가 되었다. 그의 저서 진리와 방법은 그의 나이 60세에 출간되었다. 그에 따르면 과거 역사적 문서 속에서 전통, 가치관 등의 차이를 통해 우리 자신의 문화적 기준, 편견 등이 드러나고 이를 통해 우리 삶의 이해가 더 깊어진다고 주장하였다. 또 그의 저서 진리와 방법에서 과학만이 오로지 진리에 이르는 유일한 길을 제시한다는 입장을 고수하였다. 또다른 그의 저서로는 철학적 해석학, 대화와 변증법, 과학시대의 이성 등이 있다.

 

역사는 우리에게 속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역사에 속한다.

경험이 전체 인생 속에 존재하므로, 전체 인생 역시 경험 속에 존재한다.

 

54. 칼 포퍼 (Karl Popper | Karl Raimund Popper, 1902.7.28 - 1994.9.17]

 

칼 포퍼는 서기 1902년에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포퍼는 빈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6년간 학교 교사로 일하였다. 이때 저서 과학적 발견의 논리를 출간하여 당대 가장 중요한 과학철학자로 명성을 떨쳤다. 1937년 뉴질랜드로 이주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전체주의에 대한 연구서 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쓰고 1946년 영국으로 이주하여, 런던정치경제대학에서 런던대학에서 강의를 했고 1965년 기사 작위를 받고, 여생을 영국에서 보내었다. 1969년 은퇴, 1994년까지 집필, 출간을 계속하였다.

 

포퍼에 따르면 우리는 결코 어떠한 이론이 참임을 입증할 수 없다고 했는데 과학적 이론은 참이라고 입증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에 반하는 실험 등을 통해 잠재적으로 거짓으로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를 반증 가능한 이론이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과학적 주장, 비과학적 주장을 구분하는데 이용되어 20세기 가장 중요한 과학철학자로 인정받고 있다. 주요저서로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역사주의의 빈곤, 추측과 논박 : 과학지식의 성장 등이 있다.

 

과학적 이론이 실재를 노하려면 반증이 가능해야 한다.

문제의 모든 해결책은 풀어야 할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낸다.

과학은 지나친 단순화를 체계화하는 기술이라고 정의될 수 있다.

 

55. 테오도어 아도르노 [Theodor Ludwig Wiesengrund Adorno, 1903 9 11 - 1969. 8. 6]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1903년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나 철학, 음악 등에 열정을 느꼈다. 대학에서 그는 음악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1924년 졸업하였다. 음악분야의 경력에 차질을 빚어 철학 쪽으로 기울였는데 그가 집중적으로 관심을 가졌던 분야는 1936년 출간된 에세이 재즈에 관하여속에서도 관찰할 수 있듯 대중문화 관련 산업에 대한 비판이었다.

 

독일에서 나치즘이 지배했던 동안 그는 1938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다시 로스앤젤레스로 옮겨서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강의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다시 독일로 돌아와 프랑크푸르트에서 교수직을 맡았다. 주요저서는 신음악의 철학, 한줌의 도덕,부정 변증법, 미학이론 등이 있다.

 

그에게 있어서 인간은 감정, 지성이 둘 다 포함된 전체적 존재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텔레비전, 라디오와 같은 대중 커뮤니케이션은 인간의 지능, 감정을 모두 잠식시킨다고 비난했고 사고에서 감정이 완전히 사라지면 생각할 여지도 완전히 사라지게 되기 때문에 감정을 배제한 지식을 추구하는 과학은 우리를 비인간적으로 만든다고 주장하였다.

 

지성은 도덕의 범주에 속한다.

판단력은 자아의 응집력에 따라 결정된다.

 

56. 윌러드 밴 오먼 콰인 [Willard Van Orman Quine, 1908.6.25 ~ 2000.12.25]

 

1908년 윌러드 밴 오먼 콰인은 하버드대학에서 공부하며 논리학자이자 수학자인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와 버트런드 러셀을 만났다. 1932년 박사과정을 마친 후 빈학단의 구성원들을 비롯해 유럽의 저명한 철학자들을 만났다. 그는 다시 하버드대학으로 돌아와 철학 강의를 하였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 3년을 미국 해군 정보국에서 암호를 해독 하면서 보내었다. 그는 평생 118개국을 여행했고 1956년 하버드대학의 철학교수로 임명되어 200092세로 사망할 때까지 재직하였다.

 

언어는 사회적 기술이다.

 

57. 아이자이어 벌린 [Isaiah Berlin, 1909.6.6 ~ 1997.11.5]

 

아이자이어 벌린은 1909년 라트비아 리가에서 태어났다. 러시아에서 유년기를 보냈는데 러시아제국 시절이었고 다음은 새로운 공산주의국가 시절이었다. 반 유대주의가 거세어지고 소련 정권 하에서 살기가 힘들어지자 벌린의 가족은 1921년 영국으로 이주하였다. 그는 예술, 문학, 정치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관심사를 가졌던 철학자였다. 1958년 옥스퍼드대학에서 출간된 그의 저서 자유의 두 개념20세기 정치 이론의 고전 중 하나이다. 그는 최고의 자유주의 학자로 명성을 떨쳤다. 주요저서로는 고슴도치와 여우 : 톨스토이의 역사관에 대한 소론, 자유의 두 개념, 인간성의 왜곡된 대들보 : 사상가의 이야기들, 사상의 힘, 낭만주의시대의 정치사상 등이 있다.

 

그에게 있어서 다 같이 공유하는 인간의 지상목표란 있을 수 없고 오로지 특정 개인의 목표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각자가 바라는 다양한 자유가 언제든지 서로 충동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억압과 통제를 항상 염두하고 우리의 이상이 자신, 타인의 속박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주의하며 살 것을 주장했다.

 

자유의 근본 개념은 속박으로부터의 자유이다.

 

58. 아르네 내스 [Arne Naess 1921-2009]

 

20세기의 최고 노르웨이 철학자로 인정받았던 아르네 내스는 오슬로 대학에서 27세에 최연소 정교수가 되었다. 그는 등산가로도 유명하며 1950년대에는 파키스탄 북부 티리치미르산 정상을 원정했다. 그는 1970년 교수직을 은퇴한 후부터 적극적으로 자연계에 대한 사상을 발전시켰고 환경문제 관련 활동에 직접 참여하였다. 1970년대에는 노르웨이 마르달 폭포의 바위에 매달려 인근 댐 건설 반대시위를 펼치기도 하였다. 1988년에는 노르웨이 그린피스의 의장으로 선출되었고 2005년에는 기사작위를 받았다. 그의 주요저서로는 회의론, 생태계, 사회, 생활양식, 산처럼 생각하기, 생의 철학 : 심층적 세계에서의 이성과 감정 등이 있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거리감을 두고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말고, 이 세계의 모든 요소들의 본질적 가치를 인정하고 자연 속에서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를 찾자고 주장하였다.

 

산처럼 생각하라.

미래를 생각한다면 자연에 충실해야 한다.

 

59. 롤랑 바르트 [Roland Barthes. 1915 - 1980]

 

롤랑바르트는 서기 1915년 프랑스 셰르부르에서 태어났다. 1935년 파리소르본대학에 입학하여 1939년 졸업할 때쯤 폐결핵에 걸린 상태였다. 그는 병 때문에 교사 자격을 얻기 힘들었으나, 2차 세계대전 중 병역에서 면제되었다. 종전 후 교사 자격을 취득하여 프랑스, 루마니아, 이집트 등에서 교사로 일하였다. 1952년 프랑스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1957년 신화론이란 제목으로 책을 출간하였다. 1960년대에 들어와 바르트의 명성이 프랑스, 해외에서 알려지면서 국내외를 오가며 강의를 시작했다. 그는 미테랑 대통령과 점심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세탁물 운반차에 치여 64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주요저서로는 신화론, 텍스트의 즐거움, 사랑의 단상 등이 있다.

 

언어는 일종의 피부다.

사랑에 빠진 자는 모두 미쳤다.

 

60. 메리 미즐리 [ Mary Midgley 서기 1919- ]

 

영국 철학자였던 메리 미즐리는 인간 본성을 이해하는 데에 자연과학이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였다. 그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은 문화를 인간의 동물적 속성에서 비자연 발생적인 요소로 보고 자연, 문화를 상반된 존재로 생각한다는 점에 주목하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문화는 오히려 자연발생적이며 인간은 예부터 문화를 가진 종류의 생물체로 진화하였다고 주장하였으며 인간만의 독특한 특성을 진화론 속에서 파헤쳐내며 인간을 보다 정확히 알고자 노력했다.

 

문화 없이 인간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가?

인간은 자신에게도 동물적 본성이 있다는 사실을 거부하면서, 스스로 다른 동물과 다르다고 착각한다.

61. 토머스 쿤 [Thomas Kuhn | Thomas Samuel Kuhn 1922. 7. 18. - 1996. 6. 17]

 

미국 물리학자, 과학사가인 그는 1962년 출간한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로 유명하다. 이 저서는 과학사의 전환점에 대한 연구, 과학혁명의 발생과정을 이론화하려는 시도였다 그는 과학사에서 정상과학의 시기, 위기의 시기가 번갈아가며 반복된다는 주장을 했다. 특히 새로운 이론이 형성되고 패러다임이 전환되면 새 이론 체제가 기존의 체제를 대체시키는데 이런 과학혁명의 발생과정을 이론화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정상과학은 새로운 사실이나 이론을 추구하지 않는다.

 

62. 존 롤스 [John Rawls, 1921 ~ 2002.11.24]

 

존 롤스는 1921년 미국 메릴랜드에서 태어났다. 그는 프린스턴 대학에서 공부한 뒤 군에 입대하여 제2차 세계대전 동안을 태평양에서 복무하였다. 종전 후 철학 연구로 복귀해 1950년 프린스턴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는 옥스퍼드대학에서 공부하면서 철학자 아이자이어 벌린을 만났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학생들을 가르쳤다. 코넬대학, MIT대학에서 하버드대학으로 옮겨 정의론을 썼고 토머스네이글, 마사누스바움과 같은 철학자들을 가르쳤다. 1995년 뇌졸중을 앓았지만 2002년 사망까지 연구를 계속하였다. 그의 주요저서로는 정의론, 정치적 자유주의, 마민법, 도덕철학사 강의, 공정성으로서의 정의 : 개정판등이 있다. 그는 결코 이 세계가 정의가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밝히는 것이 아니었고 공정한 기준에 맞추어 우리의 정의 이론을 시험하는 방법을 제시하려고 노력하였다.

 

정의의 원칙은 무지의 베일 속에서 선택된다.

 

63. 리처드 월하임 [Richard Wollheim, 1923 ~ 2003]

 

영국의 예술철학자 리처드 윌하임은 예술을 분석, 설명이 요구되는 추상적 개념으로 보려는 방법을 버리자고 주장했다. 그는 예술이 언제나 사회적 맥락과의 관계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트겐 슈타인이 언어사용방식이 언제나 개인의 경험, 습관, 능력 등을 반영한다는 이유로 언어가 삶의 한 형태라고 주장하며 언어의 다양한 역할을 지적하려고 했듯이 비트겐 슈타인에게 그 대상이 언어였다면 리처드 윌하임에게는 예술이 바로 삶의 한 형태라고 주장하였다.

 

예술은 삶의 한 형태이다.

 

64. 놈 촘스키 [Avram Noam Chomsky, 1928 12 7 - ]

 

놈 촘스키는 1928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출생으로 다중 언어를 구사했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수학, 철학, 언어학을 공부하면서 언어철학에 대한 획기적인 논문을 썼다. 1957년 통사구조라는 책을 출간하여 일대 혁신을 일으키며 언어학분야의 선두주자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는 언어학을 강의했고 관련 분야 저서를 내면서도 정치에 참여했다. 그는 베트남전쟁에 반대했고 급기야는 1967년 미국 지식인문화를 비판하는 저서 지식인의 책무를 출간했다. 요즘에도 언어학, 철학, 정치, 국제관계 등에 대한 광범위한 저술 강연활동을 계속한다.

그의 주요저서로는 지식인의 책무, 미국인의 힘과 새로운 지배계급 등이 있다. 그의 윤리학적 분석은 보편성의 원리에 기반을 두는데 남들에게 적용하는 것과 최소한 동일한 기준을 자기 자신에게도 적용해야 한다는 원리이다. 타인을 비판할 때에는 윤리학적 잣대를 쉽게 들이대면서, 자신에게 판단을 하려할 때는 이를 유보하려는 경향을 비판하였다. 정치적으로 보자면 자신의 정치적 행위를 먼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는 의미다.

 

우리는 선택하기에 따라 안락한 환영의 세계 속에 안주할 수 있다.

도덕적 행위의 주체는 국가가 아니라 사람이다.

 

65. 위르겐 하버마스 [Jurgen Habermas, 1929. 6. 18]

 

위르겐 하버마스는 나치 정권 하의 독일에서 자랐다. 1945-1946년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얻은 그동안의 범죄를 저지른 국가체제 하에서 살아왔다는 깨달음은 그의 철학에 평생 영향을 끼쳤다. 하버마스는 1954년 박사학위를 마치고 막스 호르크하이머, 테오도어 아도르노등과 함께 프랑크푸르트학파에서 공부했다. 1960년대, 1970년대에 본대학과 괴팅겐대학에서 강의했고 1982년에는 프랑푸르크푸르트대학에서 철학 교수로 임명되어 1993년에 퇴임할 때까지 가르쳤다. 그 후 직접 홀로코스트 부인론과 국제테러리즘에 대한 토론에 참여하며 공론장에서 맹활약을 보였다.

 

주요저서로는 공론장의 구조변동, 의사소통행위이론, 근대의 철학적 담론, 자연주의와 종교 등이 있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한 사회의 전통이 개인들에게 최대의 이익을 준다는 보장이 없기에 개인들은 이러한 전통에 의문을 제기하고, 변화시켜야 하며 공론장에서 함께 힘을 발휘해 합의를 도출하고, 변화를 유발하며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주요 저서는 공론장의 구조변동, 의사소통행위이론, 근대의 철학적 담론, 자연주의와 종교 등이 있다.

 

사회는 그 전통에 대한 비판에 따라 변화한다.

 

66. 자크 데리다 [Jacques Derrida 1930. 7.15- 2004.10.8]

 

자크 데리다는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철학에 관심이 있었지만 동시에 프로 축구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품었다. 철학의 꿈을 택하게 되어 1951년 파리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하였다. 거기에서 루이 알튀세르와 친분을 맺는다.

 

데리다는 1967년 그라마톨로지, 글쓰기와 차이, 목소리와 현상 등의 저서를 출간하며 국제적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수많은 유럽 및 미국 대학에서 정규 초빙강사로 일하다 1986년 캘리포니아 대학 어바인캠퍼스에서 인문학교수로 임명되었다. 만년에는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영향을 받아 윤리학적 문제에 연구의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주요저서로는 그라마톨로지, 글쓰기와 차이, 목소리와 현상, 우정의 정치학 등이 있다. 데리다는 해체주의학자로 해체주의는 문자 텍스트를 읽고 그 본질을 이해하는 방법에 대한 복잡 미묘한 접근 방식이다. 그에 따르면 가장 단순한 텍스트라고 하더라도 간극, 여백, 모순 등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러한 난관 등을 극복하면서 텍스트를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텍스트를 탐색하면서 정의, 기능을 정확히 이해하게 되고 아무리 단순한 책도 그 배후에는 깔려있는 복잡성에 대해 주목했다.

 

우리는 모두 중개자이자 번역가이다.

텍스트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오로지 기호로 생각한다.

나는 단지 난해하기 위해 어렵게 쓰려는 유혹에 굴복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67. 리처드 로티 [Richard McKay Rorty: 1931.10.4 2007.6.8]

 

리처드 로티는 1931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정치 운동가인 부모 밑에서 자라다 보니 어렸을 때부터 러시아 혁명가인 레온 트로츠키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었고 12살 때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사회 불의와 맞서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1956년 예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그 후 2년간 군대에 징집되었다가 제대 후에 대학 강사가 되었다. 그는 철학, 문학, 정치학에 대해 다양한 글을 썼고, 20세기 철학자로서는 이례적으로 영미 분석철학, 대륙철학 등에 사상적 기반을 두었다. 그는 실용 주의자였다.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그 말이 본래의 그 사물을 올바르게 표현하며 사실인지의 여부를 가릴 때 그는 그 말이 사실이라고 인정할 때 어떤 실용적 의미가 있는가에 대해 접근했다. 그는 1979년 출간된 철학과 자연의 거울에서 세상을 올바르게 재현해야 한다는 기존 관념을 반박하려고 했다. 그에게 있어서 지식이란 대화와 사회적 관습을 반영하는 문제라고 주장했다. 지식의 인정은 사회적 배경, 역사 주변에서 말하도록 허용된 바의 제약을 염두해 두어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우리 스스로 만든 것일 뿐이다.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는 우리가 스스로 만든 것 외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철학은 더욱 엄격해질 때가 아니라 더욱 창의력을 발휘할 때 진보한다.

우리는 머나먼 후손에게 과연 어떠한 세상을 물려줄 수 있겠는가?

우리가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다면, 다른 곳에 기댈 필요가 없다.

 

68. 뤼스 이리가라이 (Luce Irigaray, 1932~)

 

벨기에 철학자 이리가라이는 모든 사상이 그 근저에 욕망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전통적으로 남성 중심적이었던 철학이 욕망의 존재를 부인하면서 합리성을 가장한 표면 위에 끓어오르는 불합리한 충동들을 감지하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남성성과 합리성, 여성성과 비합리성을 동일시해온 오랜 전통에 이의를 제기했고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적용되는 철학적 사고를 모색 하는데에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무의식 언어구조분석자인 정신분석가 라캉의 제자이기도 했고 그에 따르면 모든 언어가 본질적으로 남성적 속성을 지닌다는 주장을 했다.

 

모든 욕망은 광기와 연관된다.

여성의 역할은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

 

69. 엘렌 식수 [Helene Cixous 1937-]

 

프랑스 철학자 시인, 소설가, 극작가 엘렌 식수는 1975년 출간한 저서 출구에서 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중 하나인 대립 상에 대한 연구를 남겼다. 지난 수세기의 사상 근간에는 모든 구성요소들을 대립 상으로 구분하려는 요소를 발견, 우세하고 우월하다고 평가되는 요소는 곧 남성성이었고 그 밖의 미약한 요소들은 여성성, 소극성을 관련지었던 점을 지적했다. 식수는 페미니즘 사상이 위계적 사고방식의 권위에 도전해야 하며, 또 여성들은 스스로 글을 써서 문학적 주체로 바로서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사상은 언제나 대립을 통해 성립해왔다.

여성들은 스스로 글을 써서 문학적 주체로 바로서야 한다.

 

70. 줄리아 크리스테바 [Julia Kristeva 1941-]

 

불가리아 철학자, 정신분석가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프랑스 페미니즘의 대표주자로 불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크리스테바는 페미니즘이라는 개념 자체에 문제를 지적했다. 페미니즘은 태생적 한계로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남성 중심적 사고성향을 유지하는 점을 지적했다. 그녀에게 있어서 페미니즘은 힘의 논리에 대항하기 위해 더 큰 힘의 논리를 끌어들여서는 안 되며 어떠한 운동, 사상이든지 기존의 권력관계를 검토하고 끊임없는 권력투쟁으로 전락할 위험을 항상 염두 해두고 반성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현대 페미니즘에서 신의 역할은 누가 하는가?

 

71. 슬라보예 지젝 [Slavoj zizek 1949.3.21 1949 -]

 

슬라보예 지젝은 1949년 유고 출생의 대륙철학자이자 헤겔, 마르크스, 자크 라캉 정신분석학에 기반한 비판 이론가이다. 정치이론, 영화이론, 이론정신분석학에 공헌을 해왔다. 그는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대학교의 사회학 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이고 유럽 대학원의 교수이다. 지젝은 대중문화에서 온 예시들을 라캉의 이론, 라캉의 정신분석학, 헤겔의 철학, 마르크스의 경제비판이론으로 사회현상을 해석한다.

 

언제나 최고의 마르크스주의 분석이란 모두 실패에 대한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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